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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2 14:04 수정 : 2008.12.12 14:29

공공노조 학교비정규직 지회가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성실교섭 촉구와 단체협상 쟁취를 위한 투쟁문화제’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 미행(美行)

[‘미행’이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 ③ 기간제 교사
10년 넘게 일해도 호봉 제자리…성과급 열외
내년을 보장 못 받아 그저 죽은 척 하고 일만

 이 기사는 ‘비정규직철폐를 위한 미디어행동네트워크’ <미행(美行)>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역순회 사업 ‘미디어게릴라들이 비정규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미행>은 블로거와 인터넷TV팀, 작가와 만화가, 언론인 등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프로젝트팀입니다. <편집자주> 

 아이들에게 겨울은 학년의 끝이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겨울은 학년의 끝임과 동시에 인사이동에 관한 소문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시기다. 과연 누가 떠나고 누가 남을지? 그리고 그 결정의 맨 마지막에 비정규직 교사(기간제 교사)의 거취가 결정된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비정규직 교사들의 송별회 회식은 정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자리다. 그들의 빈자리는 새 학기가 되면 또 새로운 비정규직 교사들이 채우는 악순환 구조가 해마다 반복된다.

 학교 비정규직 교사, 그들은 누구인가? 정규직 교사와 다름없이 가장 힘든 담임 업무를 맡고, 재수 없으면 각종 궂은 업무를 떠안아야 한다. 어떤 업무가 주어지더라도 그 업무를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비정규직 교사라는 자리다. 아이들에게조차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임을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학교 운영위원’ 선출 권리조차 없이 슬며시 교무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학교 안 ‘이방인’들이다. 가을 무렵 지급되는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10년 이상을 일해도 14호봉에 묶여 더 이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비정규직 교사가 가장 멀리해야 할 동료는 누구일까? 바로 전교조 조합원이다. 순진한 젊은 교사를 ‘포섭’(?)하려는 전교조 교사와 친해지면 내년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 그저 죽은 척하고 일만 열심히 해야 한다. 교장 교감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비정규직 교사 이외에 학교에는 ‘급사’라고 불리던 교무실 행정 도우미와 도서관 사서, 용역청소원, 영양사, 조리 종사원 등도 역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의 눈에 그들은 한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한 식구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영국 대학의 총장과 청소 아줌마가 현관에서 한참 동안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는 어느 유학생의 기사가 생각난다. 불행히도 나는 우리 학교를 거쳐 간 많은 교장선생님 중 비정규직들과 소탈한 대화를 나누는 분을 보지 못했다.

 

부산지역 비정규직 교사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 미행(美行)

 전교조 조합원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99년 합법화 이후, 한때 9만을 육박했던 전교조다. 조합원 수가 감소하는 이유로 신규교사 채용 규모의 감소, 배우자 선호 직장에서 교사가 늘 1, 2위를 할 정도로 경제 불황에 따른 안정된 직장이라는 인식, 조직의 비대화, 관료화, 참교육의 정체성 상실, 조합원 세대 간의 소통의 단절, 보수정권의 정략적인 탄압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덧 사회의 잣대로 보거나 비정규직 교사들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전교조 교사도 정규직 교사일 뿐 별로 다른 점이 없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를 ‘귀족노조’라 조롱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 간격은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왜 전교조는 비정규직 교사들을 끌어안지 못할까? 그들에게 적극적인 연대의 손을 내밀지 못할까? 가장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실천하지 못할까? 차등성과급 제도에 대해선 ‘교사들을 쇠고기의 부위처럼 ABC 등급을 객관성 없이 나눈다’며 부당함에 맞서 성과급을 반납하면서, 그런 기운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다 더 깊이 고민하지 않을까?

 결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한다. 계약기간 동안만 조합원으로서 인정하고 그 이후에 조합원 지위와 권리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조합비 차등 문제는, 비정규직 권리 보장에 관한 문제는…, 등등. 비정규직 스스로 단결되어 있지 않은 현실도 전교조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에 벅차다. 그러나 지금의 전교조는 모든 조합원들에게 학교 비정규직과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분회 활동 속에서 비정규직과의 작은 연대를 실천해야 한다는 당위성마저 조합원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 ‘국민과 함께하는 전교조’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과 그 ‘국민’ 속에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있는 학교 비정규직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결론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교조의 활동이 구체적인 실천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전교조 조직의 확대와 강화는 어쩌면 요원한 문제가 될 것이다.

  부모의 실직으로부터 가장 고통받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부모로부터 물질적인 지원과 정서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잘하기란 쉽지 않다. 부모의 가난이 아이들의 가난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800만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중 70%가 여성이라고 한다. 왜 우리 교사들이 교육운동의 차원에서건, 노동운동의 차원에서건, 사회 문제 차원에서건 비정규직 문제를 핵심 이슈로 다루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사로서 또는 교육 노동자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란 지금의 현실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꿈과 희망을 가져라’고 늘 말하면서도 그 꿈과 희망이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 구조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가르치고 있는가? 더 적나라하게 청년 실업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그 현상이 곧 나에게 닥쳐올 일임을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의 학교는 ‘공부만이 살길이다’는 구호를 반복하고 있다. 마치 ‘성장만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외치는 보수 경제학자들의 논리처럼….

 아이들의 미래의 삶과 직결되지 않는 공부가 과연 제대로 된 공부인가? 아이들을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불구덩이 속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던져 넣는 것이 오늘날의 입시교육 아닌가?

 90%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교육 강국 대한민국. 평균 학점이 4.0을 넘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우수한 성적의 대학생들. 1년 어학연수는 기본이요, 화려한 영어 시험 점수를 자랑하는 우리의 청년들이 왜 실업의 고통 속에서 ‘이태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제2의 IMF’ 앞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지, 우리 교육과 교사들이 분명한 답을 던져 주어야 한다. 나의 제자들이 아무런 꿈도 없이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탓하며 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만약, 그런 제자들과 마주친다면 과연 교사는 어떤 느낌이 들까? 아니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할까? 소수의 출세한 제자들이 권하는 술 한 잔의 달콤함과 수많은 출세하지 못한 제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교사라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동영상】 <미행> 부산 비정규직 이야기(영상제공 칼라TV)

 

 

 신학기, 봄이 오면 새로운 비정규직 교사들과 함께 생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교사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불려지듯 그들의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매겨지기를 바란다. 그들이 학교의 대체물이나 소모품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동료교사로서 그들의 당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더 이상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더라도 그 머문 자리가 아름다웠다고 모두에게 기억되기를 아울러 바란다.

  서정호 금성중학교 영어교사(전교조 부산지부 산하 부산교육정책연구소 소장) seopoe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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