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세계이주민의 날
이주노동자·인권단체 기자회견 열려
“회사에서는 일 없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두달 안에 다른 일자리 구하지 않으면 ‘불법 사람’(미등록 이주노동자)됩니다. 저도 며칠 있으면 ‘불법 사람’ 됩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 주세요”
2008 세계이주민의 날 문화·예술·지식인 선언세나디라(36·스리랑카)는 지난 7월 한국에 들어와 마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그러나 경기 침체 탓에 일거리는 점점 줄어들어만 갔다. 결국 세나디라는 4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고, 지금까지 5주 동안 일자리를 찾고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3차례로 재취업 기회를 제한하고 있고, 그 기간도 2개월을 넘을 수 없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에, 세나디라는 앞으로 4주 동안 직장을 잡지 못하면 강제출국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이주노조 등 이주노동자 인권·노동단체와 세나디라를 포함한 이주민들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민 탄압정책을 포기하고 경제 파탄의 어려움을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영 외노협 사무처장은 “출입국 관리법과 고용허가제 관련 법률 개정안을 보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크게 제한시키고 있다”며 “출국만기보험 적용 범위에 체불임금 등을 제외하는 것이나 숙박비·숙식비 임의화 같은 법 개정 내용은 결국 업체의 부담을 이주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할 것 △경제 파탄의 책임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 것 △고용허가제 독소조항과 출입국관리법 철폐 △‘이주노동자 및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조약’ 가입할 것 등을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이주노동자 337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월16일부터 12월7일까지 진행한 ‘고용허가제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96시간을 일하고 월 평균 109만원을 급여로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시급으로 나누어 보면, 최저임금 기준인 시간당 3770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주거형태는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기숙사에 사는 경우가 52.5%에 달하고, 본인 부담은 20.4%에 그쳤다. 또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평균 3519달러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사업장 변경에 대한 설문에서는, ‘사업장을 옮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응답이 전체의 63.8%인 16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더 나은 작업 환경으로 옮기고 싶어서’(32.8%), 한국 동료들의 폭언·욕설 때문에(19.5%),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18.5%) 등 노동 조건의 열악함이 주된 이유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응답자의 65.7%는 ‘직장을 옮겨본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이 가운데 ‘직장을 옮기는 과정이 쉬웠다’고 응답한 비율은 9.7%에 불과했다. 이들은 직장을 옮기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에 대해 △사업주의 비협조(24.1%) △통역지원이 어려워서(17.7%) △새로운 일자리 정보부족 (15.8%) 등을 꼽아, 직업 선택에 있어 필수적인 기초 취업 정보와 접근권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법무법인 ‘공감’ 소속 황필규 변호사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소탕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직장과 길거리에서 사망과 부상을 당할 정도로 단속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며 “무리한 단속에 대해 업주들마저 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는 단속 정책을 우선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 나눔의집 조직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자나카(38·스리랑카)는 “‘불법 사람’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단속과 경제 위기 때문에 훨씬 많은 ‘불법 사람’들이 생길텐데, 이주민과 회사 모두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정정훈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라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수생에서 ‘노동자’로 인정하겠다는 일종의 선언 같은 것”이라며 “노동자임에도 한 사업장에서만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은 노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현대판 노예’라는 말은 은유가 아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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