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15 19:18
수정 : 2010.07.15 19:18
인권위 토론회서 비판 속출
재범 억제효과 의문 제기도
상습적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이른바 ‘화학적 거세법’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인권 전문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이 법안의 문제점을 일제히 성토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 법안이) 자기결정권을 중대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재범 억제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15일 개최한 ‘아동 성폭력 재범 방지 정책토론회’에 나온 이호중 서강대 교수(법학)는 “법원의 명령에 의한 강제적 약물치료는 위헌 요소를 안고 있으며, 이는 보안처분이라는 법형식에 근거해 함부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충분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 없이 여론을 핑계 삼아 감시와 격리 위주의 통제장치를 쏟아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특히 화학적 거세법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신경화학 약물을 강제적으로 집행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가 담보되지 않으면, 어떤 강제 치료도 재범 억제의 효과를 내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이임해경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도 “아동 성폭력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특정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화학적 거세가 얼마나 예방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며, 범죄 원인을 개인의 정신적 결함으로만 보게 하는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폭력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은 “사형을 집행한다고 살인범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성폭력범 몇몇을 ‘거세’한다고 해서 성폭력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우리 안의 가부장성을 깨야만 폭력 문화를 생명과 인권의 문화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는 지난달 29일 ‘조두순·김길태 사건’과 같은 아동 성폭행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성욕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입하는 것을 뼈대로 한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안’(화학적 거세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나온 표창원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형량 강화만으로 아동 성폭력을 줄일 수 없다”며 “재범 위험이 높은 이들에 대한 전자감시와 신상공개, 경찰이나 보호관찰소 등 법집행기관의 감시 및 관찰, 치료, 교육 등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표 교수는 또 아동 성폭력범 전담 수사관 제도의 도입과 전담 재판부 설치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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