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22 20:28
수정 : 2010.12.2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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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교북동 노숙인 쉼터에서 전기가 끊기고 사흘이 지난 22일 오전 이곳에 머물고 있는 두 사람이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물건을 찾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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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썰물처럼 빠져나간 새
전기료 밀렸다고 단전까지
250명 무료급식도 중단 위기
오후 4시께인데도, 서울 종로구 교북동에 있는 ‘서울노숙자선교회’의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컴컴한 어둠과 냉기가 몰려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다.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자 10평 남짓한 실내에 자리잡은 개수대와 대형 물통, 조리기구와 된장, 감자 상자들이 뿌옇게 윤곽을 드러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선교회 최성원(64) 목사는 이곳에서 노숙인 무료급식을 위해 된장국을 끓이고, 감자를 볶았다. 저녁이 되면 한쪽에 마련된 세 평짜리 방에서 갈 곳 없는 노숙인 10여명이 겨울밤을 보냈다.
“20일 낮에 한전에서 전기요금 30만원이 밀렸다며 전기를 끊었어요. 25일 크리스마스에 후원금이 들어오기로 했으니 그때 꼭 갚겠다고 간청했는데도….” 단전 사흘째인 22일, 최 목사는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서울역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에서 나눠줄 250명분의 식사 준비도 이곳에서 할 수 없게 됐다. 지난달까지 선교회에서 지내던 노숙인 1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최근 떠났다. 선교회에 남은 심정섭(48)씨 등 5명만이 매트리스와 이불에 의지해 컴컴한 ‘블랙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처지다.
쉼터의 위기는 올해 들어 후원금이 조금씩 끊기며 닥쳤다. 사회복지사이기도 한 최 목사는 3년 전 개인돈 3000만원으로 전세를 얻어 쉼터를 겸한 선교회를 열었다. 급식차 2대의 유지비와 가스·전기 요금 등으로 한 달에 운영비가 160만원가량 드는데, 다달이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가까스로 해결했다.
하지만 지난 1월 한 은행에서 보내던 월 100만원의 후원금이 중단된 데 이어 이달에는 ㅅ교회에서 후원하는 50만원마저 끊겼다. 최 목사는 “경기 침체에다 기부금이 엉뚱한 곳으로 샌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의 후원 열기가 차갑게 식은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 목사는 베트남에서 4년 동안 선교활동을 한 경험을 살려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을 대신 받아주고, 노동자들이 고맙다며 건네는 사례금을 선교회 운영비에 보태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전기가 끊기고, 후원금이 줄었다고 당장 최 목사의 무료급식이 중단된 건 아니다. 현재 최 목사 부부는 임시로 용산구 청파동 자신들의 집에서 밥과 국, 반찬을 준비한다. 여전히 조그만 나눔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날 서울역 급식차 앞에서 만난 최 목사의 부인 정은혜(64)씨는 “식재료를 꾸준히 후원하는 분들이 계셔서 불행 중 다행”이라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무, 배추, 감자 등 야채와 돼지고기를 보내주는 후원자가 있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계신 분들이 고등어, 동태, 오징어를 보내준다”고 전했다.
최 목사 부부의 노숙인 무료급식은 매주 수·목·금·토요일 점심때 서울역에서 제공되고, 다른 단체들도 요일과 시간을 나눠 이곳에서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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