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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귀에 보청기를 한 박형배(앞줄 왼쪽)씨가 지난 4월15일 서울시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시니어 혁신 사회적기업가 발굴육성사업’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한화생명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후원하고 ㈔신나는조합이 주최했다. ㈔신나는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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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3급 박형배씨
2000년부터 박형배(67)씨는 <문화방송>(MBC) 라디오 방송인 ‘레츠고 잉글리시’의 교재를 출판했다. 1980년대 생활영어 열풍 때 생활영어 출판사에서 제작·판매·영업을 모두 경험했다. 그 뒤 음반사로 옮겼지만 언젠가 생활영어 교재를 출판하리라 꿈꿔왔다. 문화방송과 계약을 맺으면서 ‘나도 이제 돈을 좀 벌겠구나’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04년부터 정기구독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광고 매출도 따라 급감했다. ‘컴맹’이었던 박씨는 이런 변화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동분서주하며 광고주와 거래처를 만났다. 그런데 안 좋던 청각이 더욱 나빠지며 영업은 난항을 겪었다.
“22년 전 운전하는데 갑자기 ‘빠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명이 시작됐는데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질 않아요. 병원에 갔더니 왼쪽 귀가 돌발성 난청이라는 겁니다. 확실한 원인도 모르고 마땅한 치료 방법도 없어 침까지 맞아봤지만 상태가 점점 나빠지기만 했어요. 평상시에는 그런대로 들리는데 시끄러운 식당에서는 못 알아들어서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2000년 꿈꿔왔던 생활영어 교재 출판인터넷 대중화에 구독자·광고 급감
동분서주 영업도 왼쪽 귀 안들려 난항
2007년 파산 선고, 면책 결정에 실의 5년 전 ‘시니어 온라인 창업’ 교육받고
오픈마켓서 가공식품 등 판매 나서
오른쪽 귀마저 돌발성 난청 생겼지만
마을서 강의하며 사회적기업까지 준비
“오픈마켓 판매, 시니어 일자리로 적합” 시장의 변화는 개인의 노력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2007년 초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 및 면책 결정을 받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박씨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2010년 복지관 게시판에서 ‘시니어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 안내문을 봤다. 그저 인터넷을 배우고 싶어 강좌를 신청했다. 오픈마켓에 상품을 등록해서 판매하는 과정까지 직접 해보는 수업이었다. “상품을 팔기 위해 오픈마켓에 올리는 건데, 중간 도·소매 업체가 아니라 생산자와 직접 거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누가 선물로 준 즉석 쌀국수를 먹어보니 맛있어서 봉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거래를 텄습니다. 강의실에서 동료 수강생과 함께 제품 사진을 찍어 가격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오픈마켓에 올렸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주문이 들어오는 겁니다. 다른 수강생도 안 팔리는 물건은 포기하고 제 쌀국수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 일로 자신감을 얻은 박씨는 다른 수강생과 함께 가공식품 쪽으로 상품을 찾아 나섰다. 공장을 견학하고 제품을 확인한 뒤에 오픈마켓에 판매했다. 상품을 더 확보하려고 전남 해남부터 경북 포항, 경기도 가평과 강화도까지 다니며 생산자와 상담하고 상품을 확보했다. 주요 식품전시회도 놓치지 않았다. ‘장애인 창업특화 전문교육’ ‘온라인 쇼핑몰 입점 창업과정’ 등 각종 교육도 들었다. 그런데 2년 전 시련이 또 찾아왔다. 오른쪽 귀마저 돌발성 난청이 생긴 것이다. 아예 들을 수 없는 상태가 수시로 찾아왔다. 병원에서는 인공 와우 이식수술을 권했다. “이 나이에 수술한다는 게, 게다가 머리에 구멍을 내고 인공 와우를 심는다는 게 꺼림칙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고도 강의 내용은 10~20%밖에 알아듣지를 못해요. 강사가 교재 내용대로 강의를 하면 제가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데, 그게 아니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5년 전에 청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는데, 지금 상태면 청각장애 최고 등급인 2급 수준이라고 병원에서 말하더군요.” 대화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모임에 나가길 꺼리게 됐다. 보청기 없이는 가족과도 대화가 어려워지면서 사회에서 격리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교실’ 펼침막이 눈에 띄었다. 아내와 함께 방배3동 주민센터를 찾아가 시니어로 구성된 인터넷 판매 창업반 운영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담당자는 장소 사용은 물론 신규강좌로 개설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던 제가 지난해 4월부터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인터넷 실력이 나은 분들도 많아요. 단지 오픈마켓에 상품 올리는 과정 자체를 모를 뿐입니다. 컴퓨터로 이메일만 보낼 수 있으면 창업할 수 있습니다. 수강생이 상품을 올리고 주문이 들어오면 정말 좋아하고 자신감을 얻거든요. 인터넷 창업이라고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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