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2.06 14:47 수정 : 2006.02.06 14:55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영구적 과제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익히고 깨쳐야 할 지식이 너무 방대해 20년 가까이 배워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또한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그야말로 아는 것이 힘, 평생을 배워야 하는 평생학습 시대가 된 것도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우리들의 삶의 조건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에서도 교육은 국가적 수행 과제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의 새로운 부흥을 표방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문맹 퇴치와 폭넓은, 그리고 질적으로 심화된 교육을 베풀기 위해 국가적 역점 사업으로 정하고 엄청난 예산을 투여했는가 하면, 이에 소홀한 것 같던 부시 대통령도 이번 신년사에서 중국과 인도를 잠재적 경쟁자로 설정하고 이들에 추월 당하지 않기 위해 칠 만여명의 우수 전문 교사를 양성해 고교 과정에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로 거론되면서 그 중요성이 늘 강조되어 왔다. 또 우리나라 국민들의 교육열은 얼마나 대단한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우리의 교육열은 문제도 파생시키고도 있지만 그것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중요한 원동력임은 우리 모두가 수긍하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교육의 장점을 오늘은 좀 써보려 한다.

우선, 내가 보기에 미국 교육의 장점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진지하고 열띠게 토론하는 방식에 그 장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내 아이의 경우를 자꾸 들게 되어 미안하지만 경험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도리없이 또 거기서 자료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학제로 5학년인 아이는 '사이언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과제를 준비해서 직접 발표하는 수업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애는 아직 영어가 미숙하다 보니 한 번 밖에 발표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두어 차례 이상 발표해야 하는 수업이다. 아이는 거의 부모가 해 주다시피 한 과제를 가지고 그저 읽는 식으로 발표를 했는데, 그런데도 친구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제법 해서 엔간히 혼이 난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참여와 토론을 이끌어내는 미국식 교육의 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무슨 행사가 있어 학교에 가 봤더니, 아이들이 발표한 사이언스 프로젝트 보고물들을 교실벽에 붙여 놓았는데 보통 정성을 들여 한 것이 아닌 것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여러 도표들, 그림들이 온통 한 벽을 채우고 있었다.

또 놀라운 것은 이런 과제 발표에서도 그 발표 방식을 굉장히 엄정하게 평가하는 사실이었다. 사이언스 프로젝트를 학부모들에게도 고지하면서, 그 평가 기준 특히 발표 방식에 있어서, 준비해 온 글을 읽기만 하는가, 다른 학생들 - 청중들과 눈을 맞추면서 하는가, 아니면 가끔 메모를 쳐다 보면서 청중과 눈을 맞추되 자신있게 당당히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는 등 세밀한 기준을 정해서 평가를 하는 방식은 참으로 이채롭고 놀라웠다. 이런 평가 방식은 결국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는 물론이고 청중들 앞에서 자기의 견해를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시키는 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활발하게, 조리있게 발표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필자는 이번 학기에 롱아일랜드 스토니브룩 대학의 강좌를 청강형식으로 엿보고 있는데, 여기서 잘 운영되고 있는 강좌는 역시 이런 덕목들이 잘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이란 나라가 원체 자유분방하고 학생들도 그러해서(문제만 침소봉대시킨 헐리우드 산 영화들을 보고 가진 선입견 탓이지만) 수업 분위기가 상당히 어지러울 것이라 짐작하고 들어간 교실은 그게 아니었다. 교수는 열심히 묻고 학생들은 열심히 대답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였다. 별로 농담도 없이 시종 텍스트에만 집중하여 문답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수업이 진행되는 데도 잡담하는 학생, 지루해 하는 학생들이 거의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사회적 맥락에서 읽는 문학과 철학'이라는 진지한 주제의 과목이고 또 주로 문학과나 철학과생들이 주된 수강층이선지 몰라도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요즘 우리 나라의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익숙한 정보통신 세대여선지 쉽게 지루해 하고 교실에서 소란스러운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진지성, 정숙성을 미국대학생들에게서 본 것이다. 교수가 혼자서 책을 읽다시피 하는 따분한 수업 방식으로 진행되는 교실도 들어가 봤는데 그런만큼 학생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서 활기찬 수업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도 학생들이 잡담하거나 함부로 하품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유교적 관습에 물든 내가 오히려 신선하게 여길 정도의 풍경이었다. 나의 이런 경이감은 물론 요즘 우리 대학 교실의 혼란스러움과 대비하여 느끼는 그런 감정이다. 여기서 길게 논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요즘 한국의 교실 풍경은 초 중고 대학 할 것 없이 상당히 무너져 있는데 활기차게 토론하면서도 진지함과 열정으로 가득한 교실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은 모든 가르치는 이들의 소망인 즉 우리의 교육 풍토도 이렇게 만들려면 참으로 장기적이고 획기적인 기획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교육학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 본다.

우선 논리와 창의성에 근거한 논변이 평가받는 그러한 풍토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내려 초등 교육서부터 그런 훈련을 엄정하게 받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논리적 사고 및 언변에 대한 무시는 지난 황우석 사태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합리적 사고가 결여된 채 감성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황교수를 옹호하던 국민들, 언론들, 정치인들이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 혹은 토론에 익숙하지 못해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운 것이 이번의 황교수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나는 파악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풍토, 언권을 가진 사람만이(나이든, 돈이든, 실제 정치 권력이든) 좌중을 독점하는 그런 풍토, 희떫은 소리든 뭐든 남의 주목부터 받고보자는 사람에게 관심이쏟아지는 그런 풍토가 우선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논리적 대화와 발표 방법이 어릴 적 교육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또 하나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공부만 가지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학생의 지도력, 봉사정신, 체육활동 등 다양한 평가요소를 동원하여 대입생들을 선발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는 제안이랄 것도 없는 것이 미국의 오래된 평가방식이고 우리 교육학자들이나 교육당국자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런 점은 왜 원용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요즘 우리 나라 대학에서 리더쉽 우수학생, 특기자 전형 등 여러 방식으로 학생들을 뽑기는 하고 있으나 전인 교육에 입각한 학생 선발 방식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고교에서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도 극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그저 점수 따기의 한 분야로만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미국식 학생 선발은 학교의 공정하고 엄격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할 텐데 학교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걸맞게 성숙해 있는지, 이것이 중요한 관건이기는 하다.

나는 우리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은 참으로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에 와서 놀란 사실 중에 하나는 필자가 영어회화 능력을 늘려보겠다고 다니고 있는 한 교육구청의 무료 강좌에, 그것도 여기서는 제일 높은 수준의 반 정원의 약 1/3을 한국인 어머니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영주를 작정한 분들도 꽤 있지만 자녀교육을 위해 따라온 어머니들도 상당수였다. 다른 수준의 반에도 한국인 어머니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 역시 부기할 일이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우리나라인만큼 대학입학의 과열 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당국이 온갖 묘안을 짜내더라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부가 이번에 이미 밝힌 바 있지만 교육 시장을 개방하여 대학들이 제대로 된 경쟁에 뛰어들게 하고 학부모들에게도 원하는 교육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방식이 효율성 높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정부가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방과후 과외학습을 학교 내로 끌어들이는 것, 저소득층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 방책이다.

쓰다 보니 우리 교육으로 자연히 관심이 옮겨진 바 되었다. 다시 줄기를 잡아 미국의 교육에로 돌아오되 이번에는 문제점을 거론해 보자. 짧은 미국 체류에 무슨 미국 교육의 문제까지를 짚어낼 수 있을까 보냐. 만용에 가까운 짓임을 인정하면서 그저 한담 수준으로 써 본다.

미국에서 생경했던 장면은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결석하거나 지각해도 선생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이 지각을 해도 교사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의 경우 대학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선생들이 개인주의적 관행에 따라 개인의 속사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식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또 너무 쌀쌀맞은 교육 풍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혹시 총기로 학생들을 난사한 미국 고교생들의 비행은 이런 풍토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에까지 이르렀는데 이것은 경험 부족에서 온 엉뚱한 사고의 비약인지, 아니면 일말의 통찰력을 갖춘 생각인지는 독자 여러분들께 묻고 싶다. 미국 교육의 문제가 진정 무엇인가를 포함해서...

다음에는 미국이란 강대국을 가능케 했던 요인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쓰는 걸로 여러분들과 만나고 싶다.

통념과는 다른 미국(3) <끝>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