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나라가 원체 자유분방하고 학생들도 그러해서(문제만 침소봉대시킨 헐리우드 산 영화들을 보고 가진 선입견 탓이지만) 수업 분위기가 상당히 어지러울 것이라 짐작하고 들어간 교실은 그게 아니었다. 교수는 열심히 묻고 학생들은 열심히 대답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였다. 별로 농담도 없이 시종 텍스트에만 집중하여 문답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수업이 진행되는 데도 잡담하는 학생, 지루해 하는 학생들이 거의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사회적 맥락에서 읽는 문학과 철학'이라는 진지한 주제의 과목이고 또 주로 문학과나 철학과생들이 주된 수강층이선지 몰라도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요즘 우리 나라의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익숙한 정보통신 세대여선지 쉽게 지루해 하고 교실에서 소란스러운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진지성, 정숙성을 미국대학생들에게서 본 것이다. 교수가 혼자서 책을 읽다시피 하는 따분한 수업 방식으로 진행되는 교실도 들어가 봤는데 그런만큼 학생들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서 활기찬 수업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도 학생들이 잡담하거나 함부로 하품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유교적 관습에 물든 내가 오히려 신선하게 여길 정도의 풍경이었다. 나의 이런 경이감은 물론 요즘 우리 대학 교실의 혼란스러움과 대비하여 느끼는 그런 감정이다. 여기서 길게 논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요즘 한국의 교실 풍경은 초 중고 대학 할 것 없이 상당히 무너져 있는데 활기차게 토론하면서도 진지함과 열정으로 가득한 교실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은 모든 가르치는 이들의 소망인 즉 우리의 교육 풍토도 이렇게 만들려면 참으로 장기적이고 획기적인 기획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교육학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 본다. 우선 논리와 창의성에 근거한 논변이 평가받는 그러한 풍토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내려 초등 교육서부터 그런 훈련을 엄정하게 받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논리적 사고 및 언변에 대한 무시는 지난 황우석 사태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합리적 사고가 결여된 채 감성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황교수를 옹호하던 국민들, 언론들, 정치인들이 모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 혹은 토론에 익숙하지 못해 한바탕 난리법석을 피운 것이 이번의 황교수 사태의 한 원인이라고 나는 파악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풍토, 언권을 가진 사람만이(나이든, 돈이든, 실제 정치 권력이든) 좌중을 독점하는 그런 풍토, 희떫은 소리든 뭐든 남의 주목부터 받고보자는 사람에게 관심이쏟아지는 그런 풍토가 우선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논리적 대화와 발표 방법이 어릴 적 교육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또 하나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공부만 가지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학생의 지도력, 봉사정신, 체육활동 등 다양한 평가요소를 동원하여 대입생들을 선발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는 제안이랄 것도 없는 것이 미국의 오래된 평가방식이고 우리 교육학자들이나 교육당국자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런 점은 왜 원용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요즘 우리 나라 대학에서 리더쉽 우수학생, 특기자 전형 등 여러 방식으로 학생들을 뽑기는 하고 있으나 전인 교육에 입각한 학생 선발 방식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고교에서 학생들에게 봉사점수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도 극히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그저 점수 따기의 한 분야로만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미국식 학생 선발은 학교의 공정하고 엄격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할 텐데 학교나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걸맞게 성숙해 있는지, 이것이 중요한 관건이기는 하다. 나는 우리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은 참으로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에 와서 놀란 사실 중에 하나는 필자가 영어회화 능력을 늘려보겠다고 다니고 있는 한 교육구청의 무료 강좌에, 그것도 여기서는 제일 높은 수준의 반 정원의 약 1/3을 한국인 어머니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영주를 작정한 분들도 꽤 있지만 자녀교육을 위해 따라온 어머니들도 상당수였다. 다른 수준의 반에도 한국인 어머니들이 제법 있다는 사실 역시 부기할 일이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우리나라인만큼 대학입학의 과열 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당국이 온갖 묘안을 짜내더라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부가 이번에 이미 밝힌 바 있지만 교육 시장을 개방하여 대학들이 제대로 된 경쟁에 뛰어들게 하고 학부모들에게도 원하는 교육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방식이 효율성 높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정부가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방과후 과외학습을 학교 내로 끌어들이는 것, 저소득층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 방책이다. 쓰다 보니 우리 교육으로 자연히 관심이 옮겨진 바 되었다. 다시 줄기를 잡아 미국의 교육에로 돌아오되 이번에는 문제점을 거론해 보자. 짧은 미국 체류에 무슨 미국 교육의 문제까지를 짚어낼 수 있을까 보냐. 만용에 가까운 짓임을 인정하면서 그저 한담 수준으로 써 본다. 미국에서 생경했던 장면은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결석하거나 지각해도 선생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이 지각을 해도 교사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의 경우 대학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선생들이 개인주의적 관행에 따라 개인의 속사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식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또 너무 쌀쌀맞은 교육 풍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혹시 총기로 학생들을 난사한 미국 고교생들의 비행은 이런 풍토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에까지 이르렀는데 이것은 경험 부족에서 온 엉뚱한 사고의 비약인지, 아니면 일말의 통찰력을 갖춘 생각인지는 독자 여러분들께 묻고 싶다. 미국 교육의 문제가 진정 무엇인가를 포함해서... 다음에는 미국이란 강대국을 가능케 했던 요인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쓰는 걸로 여러분들과 만나고 싶다. 통념과는 다른 미국(3) <끝>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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