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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2 17:56 수정 : 2006.02.13 17:09

참새·개·이불·호주머니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하면
입안 가득 감기는 우리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서시’를 알 겁니다. ‘순정·순결한 시인’으로 불리는 윤동주님의 작품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처럼 항상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깨어있는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윤동주님은 시와 함께 동시도 많이 썼습니다.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 10년여 동안 40편 가까운 동시를 썼다고 합니다. 또 시와 동시를 번갈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윤동주님은 동시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쓴 동시들이 묶여서 <산울림>이란 동시집으로 나왔습니다. 반갑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집을 넘기기 전부터 가슴이 아릿하게 설레어 옵니다. 한 줄 한 줄 마음으로 그의 시를 읽어 내려갑니다. 역시 다릅니다.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감칠맛 나면서도 재치있는 그만의 언어가 다시 살아 오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주위의 동식물이나 무생물에 대한 깊은 공감이 꾸물거립니다. 눈만 오면 어쩔 줄 모르는 개를 보고는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개)라고 읊습니다. 가을 지난 마당에서 낱알을 쪼는 참새들이 그의 눈에는 ‘째액, 째액, 입으로 받아 읽으며/ 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참새)하는 모습으로 비칩니다. 하지만 참새는 하루종일 글씨 공부를 해도 짹 자 한 자밖에는 쓸 수 없다고 하네요.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가 그의 귀에는 ‘뾰뾰뾰’라고 들렸나 봅니다. ‘뾰, 뾰, 뾰/ 엄마 젖 좀 주’(병아리)라는 병아리들의 재촉에 엄마닭은 ‘꺽, 꺽, 꺽/ 오냐 좀 기다려’라고 말합니다.

생명이 없는 것들도 그에게는 가슴으로 통하는 친구들입니다. 이불은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이불) 고마운 존재이고, 봄겨울가을 내내 주인이 거들떠보지 않아 심심하고 허전했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호주머니)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가족에 대한 진한 사랑도 구구절절 묻어납니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창구멍) 침을 발라 작은 창구멍을 뚫습니다. 또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풍지에 쏘옥 구멍을 냅니다.(햇빛·바람)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하고 안타깝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조금이나마 나눠 져야 하는 누나 역시 그의 눈에는 고맙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침엔 해바라기처럼 화사한 누나 얼굴이 밤이 되면 ‘얼굴이 숙어 익’(해바라기 얼굴)는 게 동생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이 가지 않나요?

윤동주님의 동시는 어른들이 잊고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어린이들의 때묻지 않은 눈으로 바꿔 보게 만드는 마술 같습니다. 자연을 돌아보고 주위를 살펴보는 그의 따뜻한 언어 마술에 한번 푹 빠져보시길…. 김점선 그림. -이가서/89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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