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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으며 종이 자르며 머리대신 온몸으로 배운다 |
도서대출증을 잃어버린 아이가 몇 있어 새로 코팅을 해서 만들어 주고 가위로 자르라 했더니, 반듯하게 자른 아이가 없다. 가위질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제 뜻대로 다루지 못한다. “칼로 연필을 깎아 보자” 했더니, 온전한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도록 제대로 깎지를 못한다. 역시 칼을 다루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조각도로 고무판을 팔 때도, 책꽂이를 만들려고 톱질을 할 때도 다 그렇다. 하다 못해 청소시간에 비질을 할 때도 빗자루를 제 마음대로 부리지 못해서 오히려 청소를 방해하는 꼴이 될 때가 여러 번이다.
글씨를 쓸 때도 그렇다. 요즘은 아이들이 글씨 쓰는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교사가 판서도 많이 하지 않아 하루 종일 교실에 있어도 공책 한 쪽도 안 쓰고 집에 돌아갈 때가 많다. 그러니 글씨도 삐뚤빼뚤하고 높은 학년이 되어도 글자의 기본 자형에 맞게 쓰는 아이가 드물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결국 다 편한 세상을 살다 보니 손으로 어떤 도구를 다루는 일에 서툴어 생긴 일이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도구 사용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 애썼다. 신문을 반듯하게 수십 장씩 자르기도 하고, 신문에 나온 사진을 오리기도 하면서 가위질을 반복했다. 손가락 힘을 키워 주기 위해 오른손, 왼손에 크레파스를 바꿔 쥐어 가며 이런저런 모양을 반복해서 그리기도 하고, 천천히 정성껏 글씨 쓰는 것도 연습했다. 젓가락으로 바둑돌을 집어 옮기기도 하고, 공기 놀이도 하고, 때때로 연필 깎기 대회를 열어 잘 깎은 아이에게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먹을 수 있는 상품권을 만들어 주며 흥미를 높이려고도 했다.
공부가 되었든 놀이가 되었든 머리로 배운 것과 제 몸을 써서 배운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자전거를 어려서 배운 뒤 안 탔으나 어른이 되어도 탈 수 있는 것은 제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손을 정교하게 쓰면 쓸수록 뇌의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전문가들을 통해서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칼을 쥐고 연필 깎는 모습을 불만스러워 한다. 위험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쓸데없이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등교육은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까. 나는 이런 기초 도구 사용 능력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어쩌면 수학, 영어 등의 하위 단계 목표를 성취하는 것보다 초등교육이 담당해야 하는 훨씬 근본적인 영역이라 여긴다. 온갖 잡스러운 지식으로 머리만 크게 만드는 교육보다는 손과 발, 몸 전체를 골고루 발달시키는 그런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니 아이들과 칼로 연필을 깎는 일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권호/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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