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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3 20:01 수정 : 2005.02.13 20:01

아름다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소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따뜻한 삶의 풍경이 파스텔화처럼 펼쳐진다. 경쾌하게 읽히면서도 웅숭깊은 감동에 잔잔히 미소가 피어나고 오래오래 가슴이 일렁거린다. 제목만 보아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즐거운 독서 경험이다.

일본 작가 쓴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은 겨우 셋이다. 전직 수학교수인 ‘박사’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80분만큼만 기억이 지속되는 희한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박사를 돌봐 주러 온 파출부인 ‘나’와 어린 아들 ‘루트’(박사가 지어준 별명), 이 세 사람이 펼쳐 내는 사랑의 드라마가 바로 이 책이다. 작품은 박사의 기억 때문에 정확히 80분마다 펼쳐지고 접히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박사는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뛰어난 재능과 뜨거운 열정으로 수학과 세상에 관심과 사랑을 쏟는다. 파출부인 나를 만나면서 사람과 삶을 새삼 경험하고, 루트를 통해 어린 아이, 즉 미래에 대한 희망 또한 맛본다. 파출부인 나는 수학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는 박사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도 수학적 사고 방식, 나아가 삶의 진리에 차츰 눈뜬다. 이는 아들인 루트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마침내 수학교사가 되도록 이끈다.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면 새롭게 눈을 뜨고, 서로의 삶을 변모시켜 마침내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비록 80분마다 반복되는 기억의 망각으로 박사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는 삶이란 관심과 사랑,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를 잔잔하면서도 힘차게 보여 준다.

여기서 80분을 슬쩍 80년으로 바꿔 보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금세 깨닫게 되지 않는가. 골치 아픈 수학조차 아름다운 세계로 다가오는가 하면, 도저히 소통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과도 깊이 사랑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운명적 한계 따위도 넘어설 수 있다는 것!

수학과 문학을 절묘하게 아우르는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솜씨는 놀랍다. 수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수학적 사고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가르쳐 준다. 참고서나 문제집에 짓눌려 수학과 멀어진 학생, 수학이라면 아직도 지긋지긋한 기억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 더욱 권한다. 우리네 삶이란 아름다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더욱 아름답다. 허병두/서울 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대표 wisefr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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