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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없는 ‘인적자원부’? |
2004학년도를 보내는 마음은 착잡함 그대로다. 아니, 참담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집단 수능 부정, 경쟁적인 내신 부풀리기, 교사에 의한 답안지 조작, 교사 자녀의 위장 전입 등 고개를 들 수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터지니,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 숨을 곳도 없이 노출된 스스로를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새로운 교육부총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교육 가족들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 교육계의 소망을 저버리고 경제전문가에게 교육 수장을 맡겼으니 이것은 여러 가지 부끄러운 사태를 일으킨 교육계에 가하는 형벌이기도 했고,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얼마나 초라한지 다시 잔인하게 확인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 경제전문가가 교육 수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에서 찾는다면 억지일까? 교육인적자원부는 그 명칭에 걸맞게 슬금슬금 ‘교육’보다 ‘인적 자원’을 강조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교육부’는 어느덧 사라지고 ‘인적자원부’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새삼스럽다 싶지만 다시 묻고 싶다. 학교 교육을 마치고 난 뒤 사회의 각 분야에서 그들을 소중한 인적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교육부 스스로가 지레 학생들을 인적 자원으로 보고 그 자원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유치원 원아, 초등학교 어린이들, 중·고교 청소년들을 덮어놓고 인적 자원으로 취급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는지도 알고 싶다.
교육부가 아니고 교육인적자원부이기 때문에 경제전문가가 교육 수장이 될 수 있다는 논리요, 인적자원부의 수장이니 차라리 정치나 경제전문가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을 인적 자원으로 보게 되면 입시 지옥에 시달려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아이들이 딱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적자원으로서의 학생들이라면 마땅히 그 지옥문을 거쳐야 훌륭한 자원으로 거듭난다고 보는 것이니 동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탈락하면 불량품이요, 쓸모없는 자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도 없이 학생들에게 경쟁, 경쟁, 경쟁력만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들까지 다시 줄세우기로 되돌려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를 낳는 순간 이미 귀한 아들이나 딸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인적 자원을 생산하고 산출하는 셈이다. 교육도 이제는 그 자원의 질을 관리하는 과정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수능 부정이니 내신 부풀리기, 성적 조작 등의 사건들도 점수만을 요구하고 경쟁력만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 맞서 ‘인적 자원들’이 하는 나름대로의 자기 방어요 저항인 셈이다. 가슴이 섬뜩하다. 서울 한성여중 교장 soam8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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