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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5 19:44 수정 : 2006.03.06 16:40

문명 세계에 반해 여행을 떠났다 삶의 모순을 깨닫고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온 토드가 우리 모두의 모습은 아닐까?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가운데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삽화

자연의 풍경에 넋을 잃은 모습
자동차에 매혹 당한 토드
문명과 자연에 대한 시적인 표현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봄은 성스러운 불만과 열망에 가득 찬 기운을 품고 모울이 사는, 이 어둡고 누추하리 만치 좁은 집까지 스며 들어왔다…. 봄날의 강물은, 찬란한 빛을 팟팟거리면서, 찰찰대고 윙윙거리면서, 재잘대고 보글거리면서, 온통 몸서리를 쳐 댔다. 모울은 이 신비로운 동물에 홀딱 반해 얼이 나가고 넋이 빠졌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1908년)에서 케네스 그레이엄의 문장들은 자연을 찬미한다. 목가적 서정성으로 충만한 이 동화에서, 모울, 래트 그리고 토드가 사는 강마을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치 연극 무대의 배경처럼 잇따라 등장한다. “보랏빛 앵초가 엉킨 머리채를 마구 흔들며 제 얼굴이 비치는 거울 같은 강물에 웃음을 보내며” 때이르게 등장하고, “해질녘의 분홍색 구름 같은 분홍바늘꽃이 소망이 가득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재빨리 그 뒤를 좇아 대자연이 마련해준 무대 위에 올라선다. 그레이엄의 시적 표현들은 자연의 황홀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관통하는 주인공 토드의 이야기는 현대 문명의 대명사격인 ‘매혹적인 쇠뭉치’ 자동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레이엄은 구불대는 강둑의 느릿한 풍경에서 어느덧 벗어나, 직선으로 뻗어나간 도로 위를 질주하는 번쩍이는 자동차를 묘사한다. 바로 이 역설적인 구성에 작품의 독특함이 있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자연과 문명의 갈등에 대한 심판과 교훈을 전하는 일 없이,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모호함으로 독자의 사고를 자극한다.

모울이 강가에서 자연의 교향악에 혼을 빼앗긴 것 이상으로, 토드는 문명의 발명품에 넋이 나간다. 토드는 모울, 래트와 함께 마차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처음으로 도로에 들어서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앞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사건을 맞게 된다. 그 사건의 주인공은 번쩍거리는 유리와 값진 가죽으로 치장한 커다란 쇠뭉치, 바로 자동차다. 그것이 흙먼지 구름에 휩싸여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돌진하더니 휙 지나간 순간부터, 토드는 이 엄청난 에너지의 쇠뭉치에 사로잡히게 된다. 친구들의 말대로 단단히 홀린 것이다.

사납기 짝이 없는 자동차에 치일 뻔한 그 혼비백산한 상황에서도 토드는,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띠고는 무법자가 지나간 곳에 눈길을 붙박고 중얼거린다. “근사하고 감동적인 광경이야! 저 운동이야말로 한 편의 시야! 저게 바로 여행하는 ‘진짜’ 방법이야!… 매일 같이 새로운 지평 위를 달릴 수 있겠지! 오, 하느님! 오, 빵빵!”

이렇게 넋을 빼앗긴 토드는 마침내,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고향을 버리고 오로지 그 쇠뭉치를 향한 열정으로 새로운 삶, 새로운 모험, 새로운 고생, 그리고 새로운 희열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친구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자연의 친구들이기도 한 그들은 우정의 이름으로 토드 ‘구출’ 작전을 펼친다. 그들은 전통적 삶의 지혜를 담보하고 있는 ‘와일드 우드’의 어른 배저 아저씨와 함께, 필사적으로 토드의 혼을 앗아간 문명의 마법을 해체하고, 그를 다시 평화로운 전원의 삶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토드는 기쁘지 않다. 아니, 자신을 설득하려는 친구 래트에게 슬픔에 갈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이겼어, 래트…. 네가 옳고 난 틀렸던 거야. 나도 알아…. 다시는 나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이런, 이런 세상은 살기 어려워!” 자동차를 사랑한 천하의 말썽쟁이 토드는 이 세상 삶의 끈끈한 모순에서 체념의 도를 깨닫고는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김용석/영산대 교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서 문명에 반하는 자연주의적 교훈의 메시지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산수화 같은 동화는 자동차 도로의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모순으로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그레이엄은 다양한 생명체들을 품고 있는 대자연을 묘사할 때도, “네이처스 그랜드 호텔(Nature’s Grand Hotel)”이라고 표현한다. 호텔만큼 문명의 상징인 것이 또 있으랴? 우리는 풍치 있는 강가의 멋진 호텔에 가기 위해 자동차로 아스팔트 도로를 달려야 한다. 호텔 발코니에서 대지 위로 생명의 싹들을 밀어올리는 자연의 기운을 바라보며, 우리는 토드의 모순과 체념을 사색해야 한다.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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