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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9 21:33 수정 : 2006.03.20 15:04

덩치 1728배... 밥도 그만큼 많이?
과학을 알면 책도 새롭게 읽힌다. 걸리버 따라가며 과학원리 쏙쏙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펏 사람들보다 12배가 크다. 소인국 사람들은 따라서 걸리버의 덩치도 1728배 크다고 생각한다.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300명이 넘는 요리사를 동원해 어마어마한 음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조나단 스위프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사람의 식사량과 관계가 깊은 에너지 소비량은 몸의 부피에 비례하지 않고 몸의 표면적에 비례한다. 따라서 268분이면 충분하다. 만약 걸리버가 릴리펏 사람들이 주는대로 다 먹었다면 날마다 알맞은 양의 5배를 넘게 먹는 셈이어서 한달도 지나지 않아 고혈압, 당뇨, 간질환 등 성인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걸리버는 또 소인국 황제와 대화를 나눈 뒤 이렇게 적었다. “매우 분명하고 명료해서 내가 일어섰을 때에도 목소리를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과연 그럴까? 이것 역시 허무맹랑한 얘기다.

따져보자. 릴리펏 사람들의 키는 걸리버의 1/12분쯤 되니까 그들의 성대 길이와 지름도 대략 1/12쯤 짧았을 것이다. 입 크기는 부피에 비례하므로 1/1728로 작았을 것이다. 그런데 성대가 작으면 진동수가 커지기 때문에 릴리펏 사람들은 걸리버보다 10옥타브 이상 높은 소리를 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릴리펏 사람들의 입술과 혀 크기가 걸리버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말의 속도 또한 굉장히 빨랐을 것이다. 결국 걸리버는 릴리펏 사람들의 말소리를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보는 게 맞다.

동화를 두고 무슨 과학적 잣대냐고? 하지만 책은 읽기 나름이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문학의 눈으로 보면 훌륭한 소설이나 동화이지만, 역사의 눈으로 보면 영국 사회의 솔직한 모습이 담긴 역사책도 된다. 또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상상력이 돋보이는 과학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지금 봐도 놀랄만한 과학적 상상들로 가득하다. 거미줄로 천연색 천을 짜고, 돼지를 이용해 친환경 유기 농사를 짓고, 자석의 힘으로 섬이 하늘을 난다. 화성에 위성이 두 개 있고 두 위성의 공전주기나 생긴 모양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도 신기하다. 화성의 위성이 발견된 것은 1877년인데 <걸리버 여행기>는 1726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 과학탐험기’라고 봐도 손색이 없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걸리버의 여행을 과학적 차원에서 하나 하나 조명해 들어간다. 동인도 제도 항해중 배의 위치를 남위 30도2분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놓고 별의 위치, 경도, 위도, 북반구, 남반구 등의 개념에 대해 친절하게 부연 설명하고, 거인국을 찾은 걸리버가 묘사한 파리의 모습과 관련해 파리의 습성, 파리의 먹이, 천장에 앉을 수 있는 이유 등을 과학적으로 풀이한다. 더불어 조나단 스위프트의 과학적 상상력에 대한 경탄과 함께 그 속에 숨겨진 비과학성을 수학적인 계산과 예리한 눈길로 따져보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를 이번에는 과학의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손영운 지음, 홍승우 그림. -봄나무/95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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