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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때부터 억·조 큰 수 배워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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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이가 “어떤 아파트는 20억이 넘는다면서요?” 하자, 영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 그런 지역도 있지.”한다. 정민이 계속해서 “참, 우리나라 1년 예산이 이제 200조가 훌쩍 넘었어요.”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자신들과 상관없는 큰 수라고 생각했었지만 어른이 된 영민과 정민에게 억, 조는 그리 큰 수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매일 대하는 수이며, 일상생활 속에서도 종종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수민과 정민의 초등학생 자녀들이 “도대체 왜 억이나 조를 배워야하는 거죠? 그렇 게 큰 수는 우리랑 아무 관계도 없는데….”라며 아빠들 옆에서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수민과 정민은 속으로 ‘억이니 조니 하는 것을 언젠가는 배워야 하긴 하는데….’ 하면서도,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지고 불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혼란스럽다. 도대체 왜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들이 억, 조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걸까? ‘큰 수’ 단원은 우리가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섯 자리 이상의 수를 읽고 쓰는 법에 대해서 익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자릿값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한 단원이다. 각 자리마다 값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숫자라도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이것을 ‘자릿값의 원리’라고 한다. 자릿값의 원리는 수의 크기가 작든, 크든 일반적으로 성립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리는 인도-아라비아 수체계에서 비롯되었는 데 표기와 계산을 간단하게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지녔기 때문에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사용되게 되었다. 자릿값의 원리를 터득하려면 단위가 큰 수들에 대해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겨우 서너 개의 자리까지만 통하는 특수한 원리가 아니라 수가 크든 작든 언제나 성립하는 일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수를 처음 대할 때는 어떻게 읽고 쓰는지 알기 힘들다. 예를 들어, 1234567899라는 수가 있다. 다음 단계를 거치면 읽고 쓰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다. 1단계 : 123456/7899 일의자리에서부터 네 자리씩 끊는다. 2단계 : 12/3456/7899 계속해서 네 자리씩 끊는다. 읽기 : “12억 3456만 7899” 또는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구” 실생활에서는 세 자리마다 콤마를 찍지만, 학교 수학에서는 콤마를 찍지 않고 계속 붙여 쓴다. 콤마를 찍지 않는 이유는 소수를 나타내는 소수점과 혼동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전통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만배마다 새로운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수를 쓸 때는 세 자리마다 콤마를 찍을까?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에 미국과 협정을 맺으면서부터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습관에 의해 세 자리씩 끊어서 읽고 또 같은 방식으로 세 자리마다 콤마를 찍는다.(콤마 대신 그냥 점을 찍는 나라도 있다) 결국 숫자로 쓰여진 것은 서양을 따르고, 읽는 방법은 네 자리씩 끊어서 읽는 오래된 습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강미선/<개념잡는 초등수학 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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