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26 19:19
수정 : 2006.03.27 16:10
대구 용계초등 정여름 교사 ‘싸이 교단일기’ 화제
엄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자식 목구멍으로 먹을 것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소리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대구 용계초등학교 3학년1반 정여름(25·
옆 사진 가운데) 선생님도 날마다 행복한 ‘엄마’다.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나도 기특한 순간은, 100점을 맞을 때도 아니고, 상을 받을 때도 아니고, 숙제를 잘해 올 때도 아니다(이런 상황에서도 기특하긴 하다.^^;; 사실 그 어떤 상황도 기특하긴 하다만은..). 바로... 급식차를 타고 점심 시간마다 우리반에 오는, 요 밥통을 싹싹 비우는 순간이다.(정여름 선생님의 싸이버 교단일기, 2006년 2월14일자 중에서)’
‘언제나 처음처럼’ 꾸밈없는 교실 일상 담아
“하늘땅·디비디비딥…꿈틀이 반, 올해도 잘 놀자”
2년차인 정 교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싸이월드에 ‘사랑의 선생님과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교단일기를 쓰고 있다. 그는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 하루 생활을 정리하기도 하지만, 먼 훗날에도 변함없는 ‘첫 마음’으로 교단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교사생활을 10년쯤 하면 위기가 온대요. 그때 이 일기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구요.” 일기를 쓴 지 1년이 넘어 벌써 134번째가 됐다. 고정적으로 읽는 구독자만 1500명, 글을 읽고 간 사람은 24만 명에 이른다. 정 교사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가는 누리꾼들은 꾸밈없고 솔직해서 읽고 싶어지는 글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2일자 일기에는 ‘꿈틀이 반’(네모난 교실이 ‘꿈의 틀’이 됐으면 하는 바람과 가만있지 않고 언제나 ‘꿈틀대는 아이들’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아 지었다.)의 가정통신문이 소개돼 있다. 정 교시는 가정통신문에 “아이들을 자식같이 사랑하겠지만, 필요할 땐 매도 들겠다. 단,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비인격적인 방식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촌지는 안 받겠으니, 정 빈손이 아쉬우면 베지밀 두 개만 사오시라. 아이들을 과보호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교단 일기에는 이 반 아이들 전체 29명 가운데 20명이 출마한 반장선거 이야기, 화가나 아이를 혼냈다가 후회하는 정 교사의 모습, 도대체 물건을 챙길 줄 모르는 녀석들 때문에 골치를 썩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기를 읽다보면 새내기 선생님과 아이들이 ‘꿈틀’에서 겪는 엉뚱하고, 즐거운 일상이 그려져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사랑의 선생님’은 ‘꿈틀이’들과 잘도 논다. 틈만 나면 아이들과 ‘생태계 놀이’ ‘하늘땅 놀이’를 하며 뛰어놀고, ‘디비디비딥’ 같은 게임을 하며 한바탕 장난도 친다. 정 교사는 다양한 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호주머니를 털어 보드게임도 장만했다. 어느 추운 날에는 아이들과 교실에서 컵라면을 끓여서 호호 불어가며 나눠 먹기도 했다. ‘꿈틀이반’ 아이들은 미술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정 교사가 미술을 좋아하는 덕분에 이 시간에는 가장 자유롭게 상상하고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학습지도만 해도 만만찮고 일상적인 업무도 벅찰텐데 아이들과 이렇게 어울리는 게 힘들지 않을까? “예비교사일 때, 아이들이 학교를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노는 것은 낭비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활동이잖아요. 학교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행복해져요.”
정씨는 어려서부터 수의사나 농부가 되고 싶었다. 뭔가를 키우고 보살피는 게 즐거워서였다. 그의 솔직한 얘기로는 대학 진학할 때 점수가 모라자서 수의대를 포기하고, 교사이신 부모님의 권유로 ‘선생님’이 됐다. 그가 수의사가 됐으면 동물들이 무척 행복했겠지만, 덕분에 꿈틀이반 아이들이 그 행복을 고스란히 차지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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