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화된 학내기구 참여를”
새 학기를 맞아 학교운영위원회 선거를 둘러싸고 학교 현장 곳곳에서 잡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올 7~8월 전국 16개 시·도 교육위원 선거가 예정돼 있고, 광주와 경북이 올해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인단이 되는 운영위원 선거가 과열된 탓이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학운위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교장이 선출 규정 바꾸고후보등록 거부…사퇴 권유도
교육위원·교육감 선거 앞둬
학부모위원 선거 과열 파행
“진정한 학부모 참여 보장
새로운 틀 구성” 공감대 비민주적인 학운위 구성=오는 9월 교육감 선거를 치르는 광주에서는 학교장들이 제 사람 심기를 위해 선출 규정을 무시하고 선거를 치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ㄱ·ㅊ고는 학부모위원을 선출하는데 ‘직선제를 할 공간이 부족하다’며 교장이 선출 규정을 고쳐 간선제를 통해 낙점한 특정 후보들을 당선시켰다. ㄱ초교에서는 교장이 학부모위원 6명을 미리 확보해뒀다며 후보 등록을 아예 거부했고, ㅊ중에서는 학부모위원에 10명이 입후보했는데 학년 안배를 한다며 후보 등록만 하고 유세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위원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전북의 경우도 예년에는 지원자가 부족해 상당수 학교가 무투표로 학운위를 꾸렸으나, 올해는 상당수 학교에서 경쟁률이 2 대 1에 이르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 ㄱ고는 5명의 학부모위원을 뽑는데 7명이 입후보하자, 지역위원이 후보자들을 모아놓고 사퇴를 권유해 말썽을 빚었다. 경기도 성남의 한 초등학교는 학교장으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지 않은 학부모가 후보 신청서를 내자, ‘당적이 있으며 안 된다’며 출마를 거부해 결국 학부모가 탈당을 한 뒤 후보 등록을 해줬다. 경기도 안양의 ㅅ고에서는 학운위원 선출 과정에서 학부모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교사위원의 경우는 선거를 하지 않고 학교장이 부장교사들을 중심으로 운영위원을 낙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역위원도 경기도 안양의 ㅂ중과 같이 학교장이 ‘임명’하는 학교가 많다. 각 시·도 교육위원과 교육감 선거의 선거인단인 학운위 구성을 놓고 불·탈법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교육위원과 교육감 선거의 공정성마저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탁선거과 쪽은 “현재 규정상 선관위는 선거 관리만 할 뿐 선거인단 구성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운위 틀 새로 짜자=학운위의 현재 위상과 구성으로는 교육자치의 기본인 학교 자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법제화된 학내 기구들이 학운위에 참여하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이미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된 바 있듯이 교육위원·교육감 선거권을 학운위원이 아니라 전체 학부모나 공직선거 유권자로 확대해 학운위원이 정치적인 변수가 되지 않고 순수하게 학교 자치에만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은 “현재의 불법적인 학운위 선거를 반복하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점점 더 후퇴시키는 꼴”이라며 “학교 자치법을 만들어 학부모·학생·교사회를 법제화해 이들 기구의 대표가 학운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사무국장은 “민주적으로 구성된 학년 학부모회 대표로 구성된 전체 학부모회가 학운위에 참여해야 진정한 학부모들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정인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장은 “학생회를 법제화해 학생들이 ‘학생위원’으로 학운위에 참여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3당이 각각 학운위 운영과 구성에 관한 규정을 손질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거나 준비중이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과 구논회 열린우리당 의원이 낸 개정안은 학부모·학생·교사회의 법제화가 담겨 있고,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준비한 개정안에는 ‘자치기구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게 옳지 않다’는 이유로 법제화를 못박지 않고 있다. 교육부 지방교육혁신과 관계자는 “국회에서 조율해서 결정할 일이지만, 학부모회나 교사회 법제화는 받아들여도 학생회 법제화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광주 전주/안관옥 박임근 기자 hope@hani.co.kr
‘기부’ 강요-교장이 권환 휘둘러…“이젠 지쳐가고 있다” 4년차 학운위원의 경험담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을 4년째 맡고 있는 ㅇ씨는 “현재 학운위는 학부모들이 민주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했다. ㅇ씨는 지난해 학운위원장을 하면서 학교장으로부터 노골적인 ‘기부’ 강요를 여러차례 당했다. 학교장은 학운위원과 첫 만남에서부터 ‘교사들 단체 관광을 보내달라’고 요구를 하더니, ‘1천만원 정도 거둬서 학교에 쓰라고 주면 된다’며 노골적으로 불법 찬조금을 요구했다. 심지어 ㅇ씨에게 500만원짜리 간이수도를 기증하라며 이웃 학교를 ‘견학’시키기도 했다. 학운위 회의는 항상 학교 쪽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위원들이 날짜 조정을 요구해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학운위원들이 모여 안건을 점검했지만, 막상 회의 때 논의를 하려고 하면 학교장은 ‘왜 이렇게 따지고 드냐. 이 학교만 유독 학운위가 별나게 군다’며 안건 심의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ㅇ씨가 특별 편성된 학교 예산의 사용에 대한 질문을 하자 학교장은 ‘교장이 노력해서 받은 예산이기 때문에 운영위에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면박을 주고 공개를 거부하기도 했다. 올해 학운위원 선거도 학교장이 낙점한 위원들을 당선시키려고 학년별 안배와 정당인 배제 등을 주장했지만 학운위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ㅇ씨는 “학교를 더 나은 방향으로 운영하는 데 참여하려고 학운위 활동을 시작했는데 절대적인 권한을 휘두르려는 학교장에 맞서다 지쳐가고 있다”며 “무늬만 좋은 규정이 아니라 학부모의 참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