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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0 18:21 수정 : 2005.02.20 18:21

지금 아이들과 2년을 함께 살아왔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지난 2년 동안 우리 반에서는 아이들이 서로 싸우거나 따돌리는 일이 없었다. 늘 서로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 가운데 하나가 ‘삶을 가꾸는 글쓰기’였다. 정직하게 글을 써서 자기 삶을 서로 나누고, 삶을 나누게 되니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서로 싸우거나 따돌리는 일이 없었지 싶다.

지난 가을, 밀양시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들에게 한 시간 수업을 보여준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웃는 얼굴로 발표를 잘해줘서 손님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부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이들 일기장을 보니 전날 공개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는데 그 가운데 민혁이가 쓴 시에 내 마음이 한참 머물렀다.

병섭이

날마다 코 풀러 뒤에 가는 병섭이

어제 공개수업 때는 코 풀러 안 간다.

옆에서 가만히 보니


쪼그마한 소리로

킁 킁 코를 훌쩍인다.

충농증이 있는 병섭이가

말도 못하고 코 풀러 못 가니까

내 마음이 찡하다.

(이민혁/밀양 상동초등학교 6학년)

병섭이는 충농증이 있어 공부시간마다 교실 뒤에 가서 휴지로 코를 푼다. 그 날은 교실 뒤에 손님들이 꽉 차 있으니 코 풀러 갈 수가 없었다. 제 자리에서 풀면 될텐데 부끄러워서 그럴 수가 없었나 보다. 한 시간 내내 코를 머금고 있느라 아이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민혁이 시를 읽으니 병섭이를 미리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런 동무의 아픔을 곁에서 묵묵히 함께 느끼고 있는 민혁이 마음이 참 반갑고 따뜻하게 전해졌다.

영훈이

영훈이

오늘 학교 안 왔다.

영훈이가 걱정돼서

집에 와서

영훈이 집에 전화했다.

“영훈이가? 오늘 학교 왜 안 왔는데?”

“아파서.”

“많이 아프나?”

“어.”

귀찮게 안 할려고

그만 끊었다.

(김준혁/밀양 상동초등학교 6학년)

준혁이가 결석한 영훈이한테 전화한 것도 일기를 보고 알았다. 아이들이 이렇듯 저희끼리 서로 챙기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부디 중학교 가서도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이해를 단단하게 잘 지켜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승희/밀양 상동초등학교 교사 sonun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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