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 본관 앞 광장은 1년 365일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된다.
|
대학, 세계로 지역으로
지역과 하나되는 대학
미끄럼틀, 정글짐 등이 갖춰진 놀이터에서 10여명의 유치원생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옆에 붙은 운동장에선 아저씨들의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운동장 한쪽 농구장에선 학생들이 농구를 즐기고 있다. 운동장 위쪽엔 잔디광장이 드넓다. 몇 무리의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에선 야외 공연과 결혼식이 수시로 열린다.
운동장과 놀이터를 둘러싸고 참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사이사이 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묻어난다. 산책로를 조금 따라 가보니 평상과 통나무 방갈로 등이 눈에 띈다. 캠핑장이다. 취사장도 두 곳이나 마련돼 있다.
“누구나 오세요” 담장 무너뜨린 캠퍼스
자정까지 불 켜고 무료공연 주민초대도
이쯤 되면 어느 이름난 리조트나 자연공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곳은 대학 내 시설이다. 경북 경산시 진량읍에 있는 대구대 ‘비호동산’의 모습이다. 대구대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2002년 이 공원을 만들었다. 1년 365일 언제나 누구든지 이 공원에 찾아와 쉬거나 놀다 갈 수 있다.
대구대 안에는 비호동산 말고도 주민을 위한 시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캠퍼스 동물원, 돌비아 정원, 장승정원 등의 테마공원은 물론이고 인라인스케이트장과 테니스장, 농구장을 모두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단지 개방만 하는 게 아니라 직장인들이 저녁때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정까지 불을 켜둔다.
담장은 1981년 대구시에서 이쪽으로 이전하면서 아예 만들지 않았다. 영천지역 주민들의 접근을 돕기 위해 10m 폭의 개천 위에 다리(대구교)까지 놓았다. 건설 비용만 무려 21억원. 외부인을 위한 호텔급의 화장실도 2년 전 지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받고 있는 주차료도 이곳에선 없다. 이 때문인지 이 대학 연간 방문자는 10만명을 넘는다.
한국에서 대학은 배타성의 대표주자 가운데 하나였다. 고고한 학문의 전당으로서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대학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캠퍼스 안에 공원을 만드는가 하면 담장을 허물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박물관이나 도서관, 체육관 등의 각종 시설물도 개방하고 있다. 지역 학생이나 주민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나 교양 강좌를 운영하는 대학들도 적지 않다. 지역과 하나되는 대학, 지역 속으로 뿌리내리는 대학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캠퍼스 공원화…주민위한 휴식공간 변신
|
대전 한남대에 만들어진 ‘린튼 기념공원’.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대전에 있는 한남대는 지난달 인근 오정동 주민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린튼기념공원’ 개소식을 열었다. 50여년 전 주민들이 대대로 논농사에 사용했던 오정샘을 복원하고 주변 일대 2600평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공원 주변에는 3천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분수대, 야외 벤치 등을 만들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조선대는 2003년 의과대학 앞에 1600평 규모의 장미공원인 ‘장미원’을 개장했다. 이후 장미원은 손꼽히는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다. 매년 5월 이곳의 장미축제는 지역 주요 관광코스로 인기를 끌어 지난해만 50만명의 주민 및 관광객들이 찾았다.
강원도 삼척의 삼척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대를 설치해 지역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삼척대는 새로 개발 중인 도계캠퍼스는 테마파크형 대학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시설 개방 가속화
캠퍼스의 공원화는 상당수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담장 허물기’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콘크리트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주민들에게 푸른 휴게공간을 제공하는 이 사업은 2002년 중앙대에서 처음 시작됐다. 중앙대는 두께 16㎝에 이르는 정문 주변 담장 260m를 허물고 담장 주변 인도도 2m에서 로 늘려 학생과 주민들을 위한 쉼터로 만들었다. 이어 한국외대, 서울대 의대, 고려대, 숭실대, 명지대, 성공회대 등도 담장을 허물고 그 공간을 주민들에게 돌려줬다. 올해도 연세대, 한신대, 경기대 등의 대학에서 담장을 없앨 계획을 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시설들을 주민들도 같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대학들도 많아지고 있다. 여가 활동이나 독서, 공연 관람 등 질 높은 삶에 대한 욕구는 커지고 있지만 지자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어 대학 시설 개방은 주민들에게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충남 천안의 남서울대는 4500석 규모의 실내 체육관을 주민들에게 열어 놓고 있다. 낮 시간에 수업을 위해 학생들로만 제한하지만 저녁때부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세종대도 스쿼시장과 미니 골프연습장 등을 인근 주민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개방하고 있다.
도서관 개방도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열람과 대출에서 재학생과 동일한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대구가톨릭대는 지역 주민에게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열람증을 발급하고 있다. 열람증을 가진 주민들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5권의 책을 20일까지 빌려볼 수 있다. 익산의 원광대도 2004년부터 주민들에게 도서관의 모든 책을 대출해주고 있다. 한 달 이용자만 160~180명에 이른다고 대학 쪽은 밝혔다. 대전에 있는 배재대도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책을 대출해 준다. 18살 이상의 주민이면 53만여권의 소장 도서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동덕여대와 한성대, 충남대, 건양대, 위덕대 등 많은 대학들이 도서관을 외부에 개방하고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극장 등을 일반에 공개하는 대학도 적지 않다. 한남대, 서울대, 고려대, 대구대 등도 미술관과 박물관 이용을 누구에게나 허용하고 있다.
프로그램·강좌도 주민에 제공
대학을 단순히 개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초·중·고생이나 주민을 위한 교양 강좌나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대구대는 인근의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학교별로 신청을 받아 태껸, 검도, 씨름 등 특강을 무료료 해주고 있다. 국민대는 2003년부터 교내 콘서트홀이나 예술대 대극장에서 한달에 두 차례씩 지역 주민을 위한 ‘수요예술무대’공연을 열고 있다.
서울대 평생학습센터에서는 어린이, 외국어, 문화 강좌, 악기, 생활체육 등 6개 분야 65가지의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외대는 주민들이 영어회화와 문법 등에 대한 궁금증을 전자우편이나 전화로 질문하면 교수와 강사가 무료로 답해 주는 영어 클리닉을 운영중이다. 한국해양대는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여름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양스포츠 체험학습과정’을 열고 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