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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1 16:33 수정 : 2006.05.22 15:28

책꽂이

도둑

양반과 평민이 조선시대 대표적인 두 계층이었다면, 해방 이후 현재까지 대표적인 두 계층은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다. 어디서 태어났는가가 부, 학벌, 지위 그 어떤 것보다 위에 존재한다. 연이어 최고 권력을 장악한 쪽이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느니, 원래부터 사이가 안좋았다느니 하는 설들이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의 아이들조차 그런 편견의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도둑>의 소재는 ‘지역 갈등’이다. 아동문학에 무슨 이념 논쟁이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갈등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 사람들은 못산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지저분하다’는 말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얕잡아보는 보는 태도의 문제이듯이, 우리 사회 지역 갈등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비록 소재 자체는 무겁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동화에서 갈등의 두 축은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라도 년’이라는 낙인을 찍힌 채 살아가는 두백이 엄마와, 두백이 엄마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는 강식이 엄마다. 그런데 두백이 엄마는 자신의 남편에게조차 냉대와 구박을 받을 정도로 철저히 외톨이로 존재하지만, 강식이 엄마는 동네 사람들 모두를 원군으로 두고 있는 강자다.

따라서 평소에 형님-동생 하며 잘 지내던 강식이 엄마는 소를 판 돈을 잃어버린 큰 사건 앞에서 이성을 잃고 지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히고 만다. “전라도 사람은 뒤를 모른다 카더니, 그 속을 우째 알겄노?”라는 도둑 누명에 두백이 엄마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그저 “쥐어뜯는 듯한 울음소리를 떨꺽떨꺽 쏟아”낼 뿐이다. 억울하고 분한 건 두백 엄마지만 세상은 그이만을 욕한다.

하지만 지역 갈등의 피해자는 한 쪽 지역 사람만은 아니다. 가해자로 비춰지는 쪽의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속인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된다 두백이네가 떠밀리다시피 해서 이사를 간 뒤 강식 엄마는 편히 잠을 자지 못한다.

남편이 갑작스레 죽은 뒤에도 “이게 아무래도 벌인갑다.”고 회한한다. 순수한 사람조차 어느 순간 감염되게 하는 게 지역 갈등의 위력인 셈이다.


강식이 고모로부터 우연찮게 두백이네 소식을 들은 두백 엄마는 이튿날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두백 엄마와 화해를 함으로써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염병할 놈의 전염병’에 자신이 잠깐 헤까닥했지만, “그게 우째 두백이 엄마 잘못이겄나? 두백이 엄마는 열심히 산 죄밖에 없재.”라고 말하는 강식 엄마의 말이, 우리 아이들을 지역갈등의 소용돌이에서 지켜주는 작은 손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서지선 글, 김병하 그림. 한겨레 아이들/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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