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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1 17:07 수정 : 2006.05.22 15:23

논리로 키우는 논술내공

‘김삼순의 양머리’는 찜질방에 운치를 더한다. 그러나 양머리를 하고 교실에 앉아 있다면 어떨까? 멋스러운 정장은 격식 있는 파티에 제격이다. 하지만 찜질방에서 넥타이에 커프스단추까지 하고 앉아 있다면?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최고의 꼴불견일 터다.

패션에는 코디 감각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분위기와 맞아야 제대로 멋이 나는 법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도 그 자체로는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복작거리는 시장 한복판에서 늘어지게 이야기해서는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배추 한 단에 천원!”하는 식으로 핵심만 반복해서 외쳐야 호소력이 있다. 반면, 배추 학술 발표회에서는 어떨까? 여전히 “한 단에 천원!”만 힘주어 주장한다면? 이런 자리에서는 단가를 천원까지 낮추고서도 품질이 여전히 좋다는 점을 체계 있게 펼쳐 보여야만 사람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

따라서 무언가를 주장할 때는 분위기 파악부터 튼실하게 해야 한다. 제일 먼저 “누구한테 주장을 하는가?”부터 명확히 하자. 칵테일 효과(Cocktail Effect)라는 게 있다. 시끌벅적한 칵테일 파티에서 관심을 끄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상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아무리 소란한 가운데서도 자기 이름은 또렷하게 들리는 법이다. 내가 펼치려는 주장도 그렇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듣고 싶은 내용만 듣는 속성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의 관심사에 맞추어 이야기 하라.

예컨대, 대입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는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을 때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써내려가야 한다. 연애편지를 쓸 때도, 클럽활동에 대한 글을 학교 신문에 낼 때도 독자가 누구이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헤아려 보라. 글을 어떻게 방향 지워야 할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터다.

나아가 낱말 하나하나가 지닌 분위기(aura)도 잘 고려해야 한다. 잘 차려 입고도 어울리지 않는 액세서리를 하나 때문에 이미지가 확 깨는 경우가 있다. 문장을 짤 때도 그렇다. “그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급히 화장실로 사라졌다.”와 “그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급히 변소로 사라졌다.”를 비교해 보자. 문장에서 느끼는 ‘포스’가 확실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낱말 선택 때문에 오해가 빚어질 수도 있다. “철거위기에 놓인 ‘럭셔리 펠리스’ 30여명 주민들의 절박한 처지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보자. ‘럭셔리 펠리스’라는 단어는 호사스러운 고급주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실상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공동주택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절절한 호소는 ‘럭셔리 펠리스’라는 낱말의 뉘앙스에 눌려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같은 직종이라고 해도 ‘안전요원’이라고 부를 때와 ‘시급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부를 때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주장을 펼칠 때는 쓰인 낱말들이 나의 의도와 맞는지를 꼭 점검하자.

차별의 의미로 들릴 수 있는 단어에는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이른바 ‘P.C.’를 준수하라는 뜻이다. P.C.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의장(議長)을 뜻하는 ‘chairman’이라는 단어는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다. 의장이 꼭 ‘man’이어야 하는 법이 있는가? 당연히 의장은 여자도 될 수 있다. 무심코 쓰는 말 속에 남자만 요직을 차지해야 한다는 편견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러니 ‘chairman’은 ‘chairperson’이라고 쓰는 게 P.C.에 맞는 표현이다.

우리말에서도 마찬가지다. 흑인을 가리켜 ‘깜둥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모욕임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제 정신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민족이다.”라는 표현은 어떨까? “강인한 훈련을 통해 신병들은 진짜 사나이로 거듭났다.”는 말은 또 어떤가? 벅찬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아린 상처만 되는 표현이다. 우리 주변에는 피부색이 다른 한국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사회가 점점 선진국처럼 바뀌고 세계화되어가는 추세로 볼 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배달민족’이라는 말 속에는 은연중에 ‘인종이 다르면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색안경 낀 의견이 숨어 있다. ‘훈련을 통해 진짜 사나이로 거듭났다.’라는 말 속에도 제대로 된 군인은 남자여야만 한다는 기묘한 논리가 꿈틀거린다.

물론, 이렇게 말 하는 사람 중에는 억울한 이들이 많다. 누구를 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점을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입에서 나간 말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상대의 귀에 따라 변한다. 내 주장의 앞뒤전후를 꼼꼼하게 살펴서 수사(修辭)를 다듬고 또 다듬자. 그래야 상대의 가슴에 오해가 아닌 느낌표를 찍을 수 있다. 안광복/서울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뇌를 깨우는 논리체조>

나를 소개하는 글을 다음 조건에 맞춰 각각 500자 내외로 작성해 보세요.

1. 자신이 지원할 대학·학과에 보낼 자기소개서를 써보세요.

2. 반 아이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글을 써보세요.

체조 방법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누가 이 글을 읽을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대학은 나의 성적이나 경력 등, 평가에 점수를 줄 수 있는 점에 관심이 많이 마련입니다. 당연히 소개서에서도 가점이 될 수 있는 부분에 강조해야겠지요. 반면, 친구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글에서는, 친구들의 관심사가 나와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헤아려 보세요. 성적, 이성 친구, 게임 등 내게는 흥미롭고 절실한 사항이 다른 친구에게는 지루하고 관심 없는 내용일 수도 있답니다. 내가 쓰는 낱말 중에 상대방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은 없는지도 꼭 챙겨보아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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