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선생님의 행복한 교단일기
올해 들어 더욱 더 참으로 행복한 교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아이들과 벌써 삼년 째 만나고 있으니...
관리자들과 다른 교사들은 1학년 때부터 우리 학년의 아이들을 시끄럽다, 청소가 제대로 안된다 하면서 은근히 교사까지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천진함, 순진함, 발랄함을 알게 된다면 ‘좋은 아이들’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다른 학교에서 오신 선생님께서도 학기 초에는 버릇없다, 정신없다는 등 불평이 많으셨으나 학년 말이 되면서 아이들의 진가를 알아보시고 ‘헤어지기 서운타’라는 말씀을 하셨다.
학급 운영 모임에서 어떤 선생님께서는 작년과 올해 계속 1학년을 맡게 되어서 해마다 새로운 많은 아이들의 선생님이 된 것이 너무 기분이 좋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아이들을 학년을 따라 올라가면서 그 아이들을 더 친근하게 알아가게 된 것이 참 편안하고 정겹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참으로 숭고하다..
한 아이:
1학년 너무 까불고 산만하여 수업 중 참 힘들게 하던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때의 전학 때문인지 친구들을 못 사귀고 적응을 못하여 그 불안감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기도 했던 아이. 2학년이 되어 담임인 나를 힘들게 하였으나 선천적으로 밝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으로 반 아이들을 규합하여 토요일 오후 게임방에서 남학생만의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던 아이. 그러나 여전히 친구관계에서 먼저 다가가기 힘들어하여 모둠을 짜야하는 순간에는 늘 빠져 마지막에 챙겨야 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3학년이 되어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부반장에 출마한다고 했고, 아이들은 그런 그를 믿어주었고, 부반장으로서의 역할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을 시험하고 경험하고 있다.
또 한 아이 :
1학년 때 철수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바른 아이였고, 인사성이 바르고 청소를 잘하여 담임과 다른 샘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나 그 지나침 속에 부자유함이 있어 걱정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2학년이 되어 담임교사에게 철수의 1학년 때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손을 내저으시며 청소도 안하고 뺑돌거린다고 불만이 많으셨다.(그 말씀을 듣고 담임교사의 힘듦을 이해하면서도 그 아이에게 그것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내심 반가웠었다.) 그러나 철수는 끊임없이 성적에 대해 집착하고 인정받으려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자신을 믿지 못했었다.
2학년에는 수업 중 학습능력이 안됨을 한탄하며 자신에 대해 무력해 하고 또 학습지 검사에 연연했었다. 그러나 학년말이 되어 조금의 안정을 찾은 듯 보였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정리가 된 듯이 보였다. 자신에 적합한 진로를 찾기 위해 요리학원에 다닌다는 얘기도 들렸었다. 이제 3학년이 되어 다하지도 않은 학습지 검사테이블(수업 중 학습지를 검사하여 50개의 도장을 받을 수 있게 만든 확인표)을 내밀며 ‘예쁜 선생님’이라고 느스레를 떨며 사인을 요구한다. 못하는 자신을 들볶는 모습은 좀 없어 보인다. 그것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보여 보기가 좋았다. 내가 너무 녀석을 잘 보고 있는 것인가?
또 한 아이 :
2학년 때 청소시간만 되면 다들 하기 싫어하는 교실 청소를 말없이, 열심히 하여 착하다고 친구들로부터 칭찬받던 아이, 그러나 섬세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알 던 아이. 3학년이 되어서는 2학년 때는 자기가 결석해도 친구들이 모를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이 없었다며, 아이들 앞에 갑자기 큰소리로 애기하거나, 이상한 어투로 말해 자신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그 아이.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한 그 아이. 점심시간 그 아이와 두 녀석이 복도를 휘젓고 다녀 “너 왜 아까부터 복도를 왔다 갔다 하니?” 했더니 “ 그러면 안 되는 법이 있습니까?”라고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냐, 그래도 돼”라고 하면서 속으로 작년에 수줍어하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참으로 반갑고 흐뭇했다. 지금도 여전히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간혹 엉뚱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있다.
1학년 자치활동시간에 자신에게 부족한 미덕이 용기라고 생각한 아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2학년에 반장에 출마를 했던 아이.
자신의 꿈이 교사인 아이는 교사가 되기 위해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신의 소심함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
1, 2학년 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이제는 정말 배려하고 잘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아이, 그 경험으로 친구들의 아픔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가 힘들까하여 말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아이가 조심스레 말하는 것을 연습한다고 하는 아이.
3학년이 되니 철이 들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는 아이.....
자신의 열등을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이 되도록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가지게 된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인본주의 심리학자 로저스는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사람의 내면에는 완전함을 지향하는 선천적인 동인이 있다’는 말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함을 이야기 했었다.
우리가 멀리 볼 수 없다면 현재의 불완전한 모습만을 보고 쉽게 실망하리라.
과정을 보아내는 눈이 없다면 결과만을 보고 절망하리라.
똑같은 종의 꽃나무라도 빨리 피는 꽃이 있고 뒤 늦게 피는 꽃이 있듯이, 우리의 성장도 그러하리라.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국에는 ‘피고야 말’ 그 꽃을 보아내는 눈이 있다면, 현재의 모습에 낙담하지 않고 낙관하며 갈 수 있으리라.
로저스는 그 선천적인 동인을 끌어내는 것이 무조건적 긍정적인 관심이라 했지만,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나와 너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사랑도 관심도 힘이 세어질 것 같다.
진달래 선생님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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