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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작가 최인훈(사진)은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1960년대 좌우 이념 대립의 실상과 현실적 모순을 보여준다. 명준이 택한 ‘제3의 길’은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사이로 난, 좁고 험한 길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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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주인공 명준이 제 3의 중립국을 선택하고 길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그의 저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나 <제3의 길>에서 제시한 ‘제 3의 길’과 연결시켜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다. 기든스도 명준처럼 자유주의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유토피아 모두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실패했다 해서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과 꿈마저 버릴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제 3의 길을 제시한다. 제3의 길이란 거칠게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그 중간으로 난 길이다. 이 길은 자유가 보장된 평등과 평등이 전제된 자유를 추구하는 길이고, 경쟁이 보장된 협동과 협동이 전제된 경쟁을 지향하는 길이며, 또한 사생활이 보장된 유대와 유대가 전제된 사생활을 전망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언뜻 보아도 이 길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자유를 보장하면 평등이 깨어지고, 평등을 전제하면 자유를 제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경쟁을 허락하면 협동이 무너지고, 협동을 유지하면 경쟁이 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을 내세우면 공동체의 유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공동체의 유대를 내세우면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된다. <광장>에서 명준이 보여준 좌절과 절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기든스도 서구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밀실과 광장이 하나가 되는 어떤 기적적인 ‘제3의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일은 감히 꿈꾸지도 못했다. 단지 명준이 찾던 푸른 광장, 곧 인간이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진정한 삶의 공간으로 향하는 제3의 길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기든스가 말하는 제3의 길은 절대적·상대적 빈곤과의 전쟁, 폭력과 고통의 감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전제권력에 대한 대립, 민주주의의 민주화, 행복과 자기실현의 성취, 파괴된 환경의 구제 등을 지향하며 ‘보다 나은 곳’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머나먼 여정이다. 이 길은 결코 넓지도 않고 평탄하지도 않으며 때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스킬라와 카립디스 사이를 빠져나가는 오디세우스처럼, 줄 위에 선 광대처럼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걸어야할 험하고 가느다란 샛길이다. 그럼에도 기든스는 이 길을 따라가면 언젠가는 명준이 찾던 푸른 광장에 다다를 희망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말을 믿고 싶다. 이어 이런 생각도 함께 해본다. 어쩌면 명준이 마지막에 희미하게나마 보았던 길도 바로 이 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당시로는 유일한 제 3의 길이었던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 게 아닐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그에게는 이 길을 찾아갈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바다로 뛰어든 게 아닐까?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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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자유저술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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