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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30 14:23 수정 : 2006.05.30 14:23


‘무릎을 꿇었느냐’ 아니면 ‘무릎을 꿇렸느냐’ 라는 표현은 얼핏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다. 하지만 ‘었’과 ‘렸’ 한 글자 밖에 다르지 않음에도 그 간극은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큼을 실감한다. 언론매체들이야 걸려 든 먹잇감 하나 경쟁하듯 선정적으로 보도했을지 몰라도 학부모들과 교육당국 및 관련 단체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서로를 향해 비난을 퍼부으며 원수 아닌 원수로 관계가 악화되어 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은 양쪽이 다 피해자일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데도 말이다.

걸핏하면 교권이내 어쩌네를 떠들곤 있지만 이 단어는 이미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 전이다. 짓뭉개져버린 옛 유물을 재미 삼아 들춰내고 있는 부류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 사람들일까? 아이들의 학습권, 학부모들의 학교 감시권은 있어도, 학교와 교사를 고발 고소할 민주주의 국가임을 입증할 권리는 있어도 교권이야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게 된 지 벌써 언젠 데...... 교권이란 게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교사도 왜 없을까만 기대조차 하지 않음이 현실이다.

국가가 교육당국이 풀어야 할 문제들을 마치 단위학교가 실력이 못 미쳐 직무유기나 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 하면서 힘 있다고 기사화 시켜대는 언론기관도 제 역할에 좀 더 충실했으면 한다.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말이다.

역지사지라잖은가? 그런 처지에 서 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다 아는 양 함부로 떠들어 대서야 쓰겠는가? 최소한 이해해 볼 요량이라면 반드시 그 처지 밑에 있어보라는 것 아니던가, ‘이해하다’의 의미인 영어 단어 ‘understand’는 말이다.


‘저런 게 어떻게 선생이냐’며 얼굴 드러날 일 없다며 목청껏 스트레스도 풀 겸 막말해대는 이들에게 더도 덜도 말고 딱 열흘만 40여명의 학생들의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참견해서 해결해 줘야 하는 담임교사로, 또는 학원에서 벌써 다 배웠다며 아니 학원에서 배우면 된다며 제멋대로인 학생들 앞에서 일주일 20시간 정도의 수업을 한 번 해 보고 난 다음 감놔라 배놔라만 해도 덜 억울할 듯 하다. 선생 뭐는 왜 개도 먹질 않을까?

수업 시간 졸려서 엎드려 잠 좀 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호들갑(?) 떨며 애 기를 죽였느니 어쨌느니, 하나 뿐인 귀한 딸 금지옥엽 키웠는데 그깟 청소 한 번 안하고 도망쳤다고 두 배를 시킬 수 있느니 없느니를 목청껏 외쳐 대는, 고소까지 한다는 협박 받아가며 한 번 만나 대처해 보시라. 아무 것도 아닌 일가지고 선생들 당신이 뭔데 속상하게 하느냐는 것이리라. 급식시간 아이들이 천천히 맛있게 즐겨가며 식사하도록 하는 게 좋은 줄 몰라서 소위 ‘무릎’ 사건을 일으킨 학교에선 아이들을 15분에 서둘러 그것도 잔반 없이 식사를 하도록 종용하며 지도했을까? 그 선생들 정말 미쳤든지(?), 자식도 못 키워본, 당장 퇴출당해야 할, 세금만 축내는 벌레들은 혹시 아니었을까?

교사들이 무슨 무뇌증 환자도 아니고 안 배우겠다는 데, 청소하기 싫다며 멋대로 안 하겠다는 데, 웬 간섭이냐는 데 내버려 두면 그만 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교사들이 당할 후한(後恨)은 상황이 지금과 같다면 삼척동자도 예측해 낼 수 있을 만큼 뻔하다. 비난하고 헐뜯는 게 일인, 밑천 별로 드는 일 아니라며 왈가왈부 열심히 욕해대는 이
들이 또 벌 떼처럼 덤벼들지 않겠는가? 선생질 못 해먹게 해야 한다며 전문가인양 하는 저들이라면 혹시(?) 이 상황을 타개해 낼 비법도 소유하고 있지 않을까? 저들의 식견 높은 해결책을 어떻게 해서라도 한 수 배워야 할 텐데.....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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