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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1 16:47 수정 : 2006.06.12 16:03

생각하는 크레파스

우화의 맛은 다른 것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에 있다.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수를 더 정확히 읽는 경우가 많듯이, 나와 우리의 문제는 오히려 밖에서 바라봄으로써 더 제대로 파악할 수가 있다.

‘생각하는 크레파스’ 시리즈는 우화를 기본 틀로 한다. 거북, 벌, 쥐, 개, 까마귀, 악어 등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여기에 연필깎이나 양말, 수도꼭지, 접시, 바지, 윗도리, 공, 안경, 모자, 연필 등의 무생물도 비슷한 비중으로 나타난다.

이솝 우화가 그렇듯이 각각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물이나 무생물 그들의 얘기는 아니다. 이들을 통해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 용기, 배려, 희생, 공동체 의식 등 인간의 가치를 되돌아 보게 한다. 나와 우리를 비춰보는 거울이 되는 셈이다. 단순하게 보면 이 시리즈는 현대판 이솝우화로 꽤 괜찮아 보인다.

가령 아이들에겐 이런 기억이 있을 거다. 동무들이랑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 어떤 아이가 “내 자동차야, 손대지 마” 하면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자신이 가져온 장난감을 품안에 챙기며 분위기가 일순간 냉랭해진다. <우리들 모두의 것>을 보면 이런 아이들의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정원의 예쁜 꽃과 잎사귀가 풍성하게 달린 나무,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보고 벌들을 서로 “내 것”이라고 우긴다. 그 결과 사이는 나빠지고, 꽃과 나무와 사과 어느 것도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벌들은 한참 동안 이 일에 대한 고민을 한 뒤 “우리들의 것”이라고 마음을 바꾼다. 그러자 꽃도 나무도 사과도 모두 다시 벌들의 것이 되고 벌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뻔한 조언이나 충고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학교 도덕이나 윤리 과목처럼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식의 교훈적, 훈계적 가르침을 전달하는 모습은 절제된다. 대신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등장 소재들의 처지가 돼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꼬마 독자들은 이야기를 즐기는 사이에 그 의미를 마음 속으로 생각해본다.

친구는 사소한 결점에 불평불만하는 게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서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이고(<노래하는 까마귀>), 자신을 힘들게 했어도 손길이 절실한 친구를 먼저 돕는 게 도리이고(<둥글이 연필깎이>), 완벽하게 준비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는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까만 연필과 빨간 연필>)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을 어떤 앎이나 깨달음으로 이끄는 데는 각각의 얘기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독특하고 신기한 형태나 습성이 큰 구실을 한다. ‘짧은 다리 악어새’와 ‘까만 배 악어새’ 악어새(<짧은 다리 악어새>), 몇날 몇일을 웃어대기만 하는 거북(<찡그린 거북>), 밤마다 까옥 까옥 울어대는 까마귀(<노래하는 까마귀>)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신선하고 기발한가? 마치 환타지 속에 들어온 같은 느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 속에서는 교사나 부모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책의 지은이가 주제를 내보이거나 강조하지 않아도 깨달음이 저절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2004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찌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크람 거셈푸르 등 이란 작가들이 썼다. 김영연 옮김. 큰나/전 30권, 각 권 4900~59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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