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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13 14:14 수정 : 2006.06.13 14:14

신규교사가 교무실에 불려 가더니 꾸중을 듣고 돌아왔다. 교감이 둘이다 보니 꾸중도 배로 들었단다. 그 말을 들은 선배 교사들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버리라”고 위로를 한다. 규모가 큰 학교(43학급 이상)는 교감을 두 사람을 두고 있다. 교감이 둘이면 일처리가 수월하고 편해서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평교사들은 농담섞인 말로 “과자값만 더 든다”며 사래를 흔든다. 교감 자신도 교감이 둘인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감 서로가 마음이 잘 안 맞기도 하겠지만 서로가 상관을 하나 더 두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한 학교에 교감을 두 사람이나 두게 된 것은 학교가 커서 그 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승진의 기회가 부족한 교원들에게 조금이나마 승진의 기회를 더 열어주기 위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일의 많고 적음을 생각한다면 평교사의 처지에서는 교장이나 교감은 평교사의 일을 덜어 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일거리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교가 민주화되기 이전만 해도 교장 교감이 없으면 교무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교원은 그 직급구조가 교장 교감 교사의 3단계로 퍽 단순하다. 10단계에 가까운 일반 공직 구조에 비하면 교직의 직위 단계는 너무 적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직위의 단계가 적어서 좋은 점도 없지는 않지만 좋지 않은 점이 더 많다. 교직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는 젊은 교사에게는 상관이 적음에 따라서 간섭받을 일 또한 줄어든다. 그래서 인격 대우를 받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지위와 자격의 변동이 없이 늘 평교사로 머물다 보면 불만이 싹트기 시작한다.

법으로 정해진 직위는 아니지만 이른바 보직교사가 직위에 버금가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교원은 수직 계급사회가 아닌 평등사회라면서도 보직교사를 부를 때는 ‘선생님’이란 호칭보다는 주임으로 불렀다. 또 일반 기업이나 공직자들의 호칭을 흉내애서 과장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었다. 주임이니 과장이니 불러도 맘에 차지 않자 이제는 보직교사를 부장으로 부른다.


부장이란 호칭은 따지고 보면 교감이나 교장보다 더 높은 직함이 아닌지 모르겠다. 실제로 교장이 승진(?)해서 연수원의 부장이 되기도 한다. 옛날엔 장관을 부장으로 부르던 때도 있지 않았는가.

교육혁신위원회가 교원승진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면서 교단현장에서 수석교사에 대한 요구가 드높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석교사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반대하는 의견은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라 간섭받을 일만 더 생기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직생애 평생동안 단 한 번의 승진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머물다 정년을 맞는 노 교사들에겐 평교사란 직위에서 한 걸음이나마 벗어나고파 수석교사제 신설에 대한 목소리를 더욱 높인다.

교원승진제도의 개선안 논의에서 보이는 교사들의 견해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점수 관리를 게을리 해온 일부 교원단체 조합원의 평교사들은 교장선출 보직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오랫동안 점수관리에 힘써온 또 다른 교원단체의 회원들은 현행 승진제도가 유지되기를 더 바란다. 이렇게 교직사회가 제 논에 물대기식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부끄런 일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학생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행정을 하는 말단 교육행정기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일까. 선생님이란 부름말이 많이 나와야 할 학교지만 교장이니 교감이니 부장이나 하는 관료 투의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선생님의 호칭도 교장이나 교감은 반드시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으로 교장이나 교감의 직함을 꼭 덧붙인다. 교사의 경우는 교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비하면 좀은 우스운 호칭이다.

더구나 대학 교수의 경우에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거의 쓰지 않는다. 간혹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게되는 어떤 대학교수는 모욕을 당한 듯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교육청에서 말단 직원에 지나지 않는 장학사도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으면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지긋한 학자들은 오히려 교수란 호칭을 들으면 서운해 한다. 그들에겐 역시 ‘선생님’이란 호칭이 맘에 드는가 보다. 공자도 맹자도 석가도 예수도 그들의 제자들은 선생님으로 불렀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이해가 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원한다. 교장이나 교감이나 수석교사나 그 밖의 어떤 직위의 교사라도 평교사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들을 싫어할 까닭이 없다. 학교 규모가 커서 업무처리를 쉽게 하려고 한다면 교감에 따라서 그 업무를 나누어서 따로 처리하게 하면 일을 덜어주게 되어 교사들은 좋아할 것이다. 교장도 교사를 간섭하고 통제하기 보다는 교원의 복지나 후생을 위해서 학교발전기금을 모금해와서 학교 시설을 더욱 좋게 해 준다면 누가 싫어할 것인가.

수석교사도 그렇다. 수석교사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석교사에게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가 중요하다. 탁월한 학식과 교수기술로 교사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대신해 주기도 하며 교직 상담역까지 맡아 준다면 그를 싫어할 평교사는 없을 것이다.

수석교사제가 성공을 거두려면 수석교사는 대학교수 이상의 학식을 갖추고 교단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하면서 새로운 교육이론을 만들어 내고 학자들이 만든 이론을 검증하고 또 후배 교사들에게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며 교사들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춘 수석교사는 교육현장에서 유능한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 책임까지도 갖게 해야 한다. 선진 외국에서도 사범대학이 아닌 초등학교나 중등학교에서 교원을 양성하기도 한다는 소문이다. 이렇게 초중등 학교 현장에서 양성한 교원이 교직에 대한 적응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교단은 책상앞에서 책을 통해 암기한 지식보다는 교단현장경험을 통해서 습득한 산 지식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 따라서 교원 양성기관의 교수도 교단현장경험이 풍부해야 하며 또한 수시로 현장경험을 해야 한다. 이것이 수석교사와 교원양성 대학의 교수가 교류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 이름이야 수석교사가 되든 선임교사가 되든 전문교사가 되든 교단 현장경험이 풍부하면서도 학식이 뛰어난 대학교수 이상의 학식과 권한을 갖춘 교사는 필요하다. 지금처럼 교원을 초중등 대학교원으로 구분하기 보다는 그 능력에 따라서 가능하다면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교류할 필요도 있다.

이렇게 능력있는 교사가 유초중고 대학을 옮겨 다니면서 교단 현장에서 시범을 보이면서 후배 교사들을 지도할 때 교사들의 교수 기술은 향상되고 아동 학생들도 질높은 수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석교사제도라면 교단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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