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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5 18:59 수정 : 2006.06.26 15:48

우리 아빠는 자랑스런 버스운전기사

우리 아빠는 버스 운전기사이시다. 광주시내는 아빠 손바닥 안에 있다고 할 정도로 광주지리를 잘 아신다. 어렸을 때 나는 우리 아빠가 운전기사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빠와 손을 잡고 버스를 타면 공짜로 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은 돈이지만 남들은 다 내는 돈을 내지 않고 탄다는 나만의 특권이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또 남들보다 훨씬 큰 차를 운전하시는 아빠가 멋져 보였고, 정장보다는 유니폼을 입은 아빠의 모습이 늠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아빠의 직업을 말하기가 꺼려졌고, 부모님의 직업을 쓸 때 망설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빠가 운전하시는 버스에 타게 되었다. 아빠는 나를 너무나 반가워 하셨지만 나는 왠지 버스의 손님들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럽고 빨리 내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릴 때는 좋았던 아빠가 주는 나만의 특권이 이젠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다.

아빠는 그날 저녁, 내게 전화를 해서 물으셨다. “왜 빨리 내려버렸느냐고, 아빠가 부끄러워서 그런 거냐고.” 나는 도리어 화를 내며 “내리는 곳을 잘못 알고 빨리 내린 거”라는 어쭙잖은 변명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나쁜 아이 같았고 아빠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사실, 우리 아빠는 버스운전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우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서는 아빠가 가진 운전기술이 전부였다고 했다. 당신의 일에 대한 열정 없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훨씬 힘에 부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일 텐데. 우리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항상 열심히 일 해 오신 것이다. 언젠가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눈물을 보이시며 아빠는 오빠와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아빠처럼 되지 말고…….”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아빠를 잠시나마 부끄러워했던 내가 한없이 철없는 아이 같았다 강하게만 느껴졌던 아빠에게서 눈물은 내게 큰 감정의 변화를 일으켰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친구들이 물으면 항상 당당하게 “우리 아빠는 시내버스 운전하셔!”라고 말한다. 아침에 등교하는 버스를 아빠가 운전 하실 때면 항상 시간에 맞춰서 나만의 특권(?)을 자연스럽게, 당연스럽게 이용한다. 아빠의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장시간 운전으로 피곤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내 나름대로 웃음을 드리려 쫑알쫑알 떠들어 댄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 친구들도 내 특권을 같이 누릴 때가 있는데, 그 얘들 앞에서도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아 기분이 좋다. 그런 딸을 보며 기분 좋아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볼 때면 괜스레 마음이 뿌듯하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전대를 잡고 사느라 힘드실텐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사는 아빠. 우리 아빠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님이시다. 등·하교길에 다른 아이들은 누릴 수 없는 기쁨을 나에게 주시는 나만의 멋진 운전기사님이시다.

이세영/전남대사대부고 3학년


[평] 아빠에게 힘을 주는 딸 상상만으로도 즐거워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운다. 그러나 그들은 교문만 벗어나면 수천 만 개의 직업에 귀천의 등급을 매겨놓는 편견과 만난다. 그런 편견을 경험하며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인간의 노동마저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이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말아야 할까?

이 글은 자신이 어린 시절에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부끄러워했던 추억과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아버지를 존경하며 친근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이 나타나 있다.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딸의 심리변화가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읽는 이의 눈길을 붙잡아 두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딸에게 힘을 얻어 신나게 일하실 아빠의 얼굴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주어 글을 읽는 재미가 난다.

박안수/광주고 교사, 문장 글틴 비평·감상글 운영자 teen.munj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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