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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철밥통 교사 죽이기 |
한 쪽은 ‘철밥통, (노동시장)유연화’라고 부르는 것을, 다른 쪽은 ‘고용안정, 고용불안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현상인데 해석이 다르니 표현도 다르다. 여하튼 편의상 ‘철밥통, 유연화’란 단어를 쓰기로 하자. 철밥통이란 ‘어렵게 취직한 만큼 쉽게 해고당하지 않는 것’이고, 유연화란 ‘쉽게 취직한 만큼 쉽게 해고당하는 것’이라고 거칠게 정의할 수 있다. 철밥통의 장점은 고용안정이고, 단점은 복지부동이다. 유연화의 장단점은 이와 반대이다. 그렇다면 철밥통과 유연화 가운데 무엇을 골라야 하는가? 학교 현장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어느 사립학교는 교직원의 절반 가량이 비정규직이다. 한 해에 십여명의 비정규직교사가 계약되고 해약된다. 학기 중에도 여러 명의 교사가 자의반 타의반 들락날락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두 명의 교사가 담임을 하던 중에 성추행 혐의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만 피해추정자(학생)의 부모가 가해추정자(기간제 담임교사)를 형사고소를 하지 않아 성추행 진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한 경우는 성추행이었지만 다른 한 경우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성추행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기간제 담임교사(ㄱ교사)의 경우는 이전 학교에서도 성추행 혐의로 물러난 전력이 있다고 증언하는 사람이 있고, 피해를 보았다고 진술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추행을 했다고 보기 힘든 기간제교사(ㄴ교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ㄱ교사는 이 학교를 그만 둔 뒤 다른 학교로 쉽게 이직을 했다. ㄴ교사는 성추행혐의란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학기 중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만약 ㄱ,ㄴ교사가 모두 정규직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비정규직을 수시 채용할 때보다는 정규직을 정기 채용 할 때에 좀더 신중하게 사람을 뽑을 것이다. 뽑힌 사람 역시 평생 근무할 직장을 위해 허튼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복지부동해져서 성추행같은 못된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징계위원회를 통해 배제징계(파면,해임)를 해서 아예 몇 년간 임용시험도 못치르게 하면 된다. 사실 못된 행동을 안했는데 억울하게 징계 당했다면 재심을 통해 복직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ㄱ교사는 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해고 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다른 학교도 못가게 될 수 있고, ㄴ교사는 억울한 누명을 썼기 때문에 해고 안 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명예도 지킬 수 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교사 모두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ㄱ교사는 못된 행동을 하고도 다른 학교에 쉽게 채용이 되었고, ㄴ교사는 억울하게 해고 당하고도 재심을 통해 복직할 수 없게 되는 모순에 빠진 것이다.
교사고용이 유연화되면 즉 철밥통이 깨지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른 학교의 사례를 들자면, 한 기간제 교사는 학교에 음란사진을 가지고 다니고, 학생들을 불러 노래방에 다니길 일삼고, 시험문제를 알려줘서 평균 90점이 넘게 하고, 근무 중에 채팅한 여성이랑 만나자는 전화를 하고, 계약 만료될 시점에는 자기가 근무하는 학원을 선전했다. 그러나 이 기간제 교사를 징계해서 다른 학교에도 못가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비정규직교사이기 때문이다. 즉, 권리가 없기 때문에 책임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 교사 특히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을 의식화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만약 비정규직을 늘려서 학생을 무의식화하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으나 상업화하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정규직이 자기들의 권리만 주장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만약 비정규직을 늘려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하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으나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불안해도 효율적이면 되는가? 부패해도 유능하면 되는가? 무책임해도 권리만 뺏으면 되는가?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이나 그만큼 안정적이고, 다소 무능해 보이나 그만큼 윤리적이고, 다소 권리를 챙기려는 것으로 보이나 그만큼 책임을 지려는 철밥통 교사를 죽여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 이 글의 의도는 비정규직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인데, 그 의도가 오해될 수도 있겠네요. 기간제 선생님 가운데 혹시 상처 입으신 분들이 있다면 사과를 드립니다. 제 표현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한 것이니 용서를 빕니다. 아무튼 기간제 선생님들을 대부분 정규직으로 채용하자는 의도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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