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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2 17:22 수정 : 2006.07.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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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우리 가족

요즘 잘 팔리는 어린이 책 중 내 눈길을 끈 두 권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배려>와 <아름다운 가치 사전>이다. 둘 다 남을 이해하고, 아끼고, 배려하자는 착한 마음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그뿐인가. 베스트 셀러 상당수에 눈물겨운 자기희생과 뿌듯한 협동정신과 가슴 뛰는 정의가 넘친다. 부자 되고 지위 높아지는 길 찾는 데 골몰하는 어른 베스트 셀러 목록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착한 책을 많이 읽는 우리 사회는, 그리하여 양보와 배려가 넘치는 착한 사회가 된 걸까?

우울하게도 현실은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공중도덕이란 걸 박물관의 유물 정도로 여기는 듯할 때가 너무 많다. 공공장소에서 남은 아랑곳않고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 예를 일일이 들 수는 없다. 밤기차에서 전자 총을 갈기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제지했다가 그 부모에게 “히스테리 부린다”는 폭언을 들었던 경험담도 굳이 꺼내지 않겠다. 착한 책은 그렇게 많이 읽히는데 왜 사회는 더 거칠고 뻔뻔해지는 걸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행복한 우리 가족>은 그렇게 부글부글 끓는 속을 펑 터뜨려 주는 그림책이다. 이 가족, 자기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치며 살고 있는가. 사소해 보이는 그 민폐들은 마치 폭탄의 도화선을 태워 들어가는 불꽃처럼 위태롭다. 그러나 작가는 나무라지도, 질서를 지킬 것을 권하지도 않는다. 무심한 아이의 일기 글과 일상 풍경 속에 악센트처럼 찍힌 과장과 왜곡을 통해, 당신들만 행복하면 다인지를 이죽거리며 묻고 있을 뿐이다.

작가의 그런 의도는 표지부터 뚜렷하다. 도전적인 빨강은 투우사의 깃발처럼 독자를 약올리며 펼쳐진다. 속도를 위반하며 질주하는 빨간 자동차도 책 전편을 통해 독자를 도발한다. ‘당신들, 행복한 가족이야? 그래도 우리만 하겠어? 따라와 보셔!’ 하는 듯하다. 한편 빨강은 퇴장을 명령하는 레드 카드를 연상시킨다. ‘우리’의 ㅇ 대신 들어선 금지 표지판도 독자를 주춤하게 한다. 도발적으로 유인하면서 동시에 강력하게 밀어내는 이 역설은, 한국 어린이 책에 흔치 않은 그야말로 도발적인 기법이다. 이 책을 보고 사람들이 뜨끔해져서 공중도덕을 잘 지켜야지, 다짐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부어지는 책 속의 도덕 잠언들에 무감각해진 귀를 그 폭탄으로 한 번 뻥 뚫어줄 수나 있으면 좋겠다.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sjch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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