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2 17:51
수정 : 2006.07.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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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사회복지 자원봉사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이다. 남을 돕는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타인과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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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유, 논술 /
대학입시에 학생들의 봉사활동 실적이 비교과 영역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체 사회복지 자원봉사자중 학생의 비율이 49%(2005년 기준)라고 한다.
한국과 토고의 월드컵 경기가 치러진 다음 날, 반 학생들을 데리고 ‘전일제 봉사활동’에 나섰다. 장소는 일산의 홀트복지타운.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다. 처음에는 움츠린 눈빛으로 장애인들을 대하더니 점심시간에는 그 분들과 휴대전화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은 청소도 하고 노트를 비닐로 포장하는 그곳의 자활사업도 도왔다. 시종일관 그 분들과 웃고 어울리고 떠들었다. ‘무서운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너무 순수했다. 우리처럼 연예인을 좋아하는 똑같은 사람이더라. 도와 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다음 날 학생들의 소감이다.
무지는 편견을 낳는다. 접촉과 소통이 없으면 ‘차이’는 ‘공포’가 된다. 예전에는 무서웠다는 고백이 다소 충격적이지만, 우리 학생들이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스스로 편견을 깨닫는 자세는 너무나 흐믓하다. 몸과 마음으로 또 하나의 진실을 체험한 학생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러나 달리도 생각해 보자. ‘똑같은 사람’임을 새삼 깨달은 것이 ‘뿌듯함’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 우리의 편견이 깨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도움을 준 자’의 자기만족인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한센병 환자들과 그들의 복지를 위해 애쓰는 조원장의 갈등이 나온다. 지극히 열정적으로 복지사업에 힘쓰는 조원장에게 한사코 불신으로 응수했던 환자들을 떠올려보자. 봉사와 이타적 행위는 도움 받는 사람의 아픔을 이용한 자기 숭배의 씨앗일 수도 있다. 당혹스럽게도, 쫓겨난 조원장이 원장 신분을 버리고 한 명의 주민으로 소록도에 돌아왔을 때에야 그들은 화해할 수 있었다. 소외된 사람들을 진정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사랑 없이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나를 위한 것일까, 상대방을 위한 것일까. 흔히 봉사활동을 하고 온 학생들의 활동 소감에는 무탈한 자신의 조건을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는 것까지 그 내용이 다양하다. 그러나 남을 도와주고 얻은 기쁨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가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비롯된다는 점은 무언가 허탈하다. 어쩌면 이타적 가면을 둘러 쓴 이기적 행동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덕의 기본 원리를 ‘동정심’에서 찾았던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잠시 귀가 솔깃해진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어떤 동기에서 행위를 하고, 또 어떤 행위를 가치 있게 평가하는가를 탐구한 결과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욕망이다. 이것은 동물들도 공유한다.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려는 욕망인데, 이것은 인간에게만 발견되고 동물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마지막 다른 사람의 행복을 도모하고자 하는 욕망인데, 이것 역시 인간만의 것이다. 인간이 때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까닭도 바로 이 욕망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이 욕망을 일컬어 ‘동정심’이라고 불렀다. 동정심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과 공감하는 것이다. 마음 깊이 다른 존재와의 일체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도울 때에 순수한 행위가 가능하다. 사심을 배제한 동정심이야 말로 숭고한 것이며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지 선한 행위를 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키는 자질, 동정심을 스스로 계발시켜야 한다고 쇼펜하우어는 믿었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자신들을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고 동등한 인격으로 보라고 주문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똑같은 사람’. 우리 학생들이 장애인들의 불편을 불행으로 읽지 않고, 육체의 차이보다 취향의 같음에 주목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그들을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친구로 보았기에 가능했을 터다. 입시에의 도움을 바라고 시도된 봉사활동이기에 동기가 순수하다 볼 수 없지만 멋진 마음의 자세로 만회하는 모습이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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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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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의 자아가 더 건강하다고 강조한다. 한비야 씨나 최일도 목사처럼 스스로 기뻐서 남을 도울 때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하다. 8천억 원이나 1조원을 기부할 수 있는 어느 기업 총수보다도 우리 학생들의 마음이 더 좋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되새겨볼 일이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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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는 사람을 칭찬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2. 때로는 돈을 기부하는 것이 행동으로 돕는 것보다 더 큰 화제가 된다.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 입장과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3. 최근 미국의 갑부인 워렌 버핏이 무려 37조원의 돈을 자선재단에 기부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큰 돈을 기부하는 것은 더 ‘도덕적’인가? 각자의 생각과 이유를 말해 보자. 4.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기 위해 기부와 봉사활동을 이용하는 유명인들이 종종 있다. 이런 행동은 입시나 취업을 위한 일반인들의 봉사활동과 어떻게 다르고 같을까?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보자. 5. 때로 봉사활동은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발적 봉사활동과의 차이는 무엇일지 이야기해 보자. 6. 기업들의 협력 관계에서는 윈윈(win-win)의 거래를 강조한다. 봉사활동을 통한 행복의 공유도 윈윈(win-win)으로 볼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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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를 분명하게 살피려면?
‘그것은 A를 위한 것인가’를 상대에게 질문해 보세요. 주장의 동기는 목적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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