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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9 17:12 수정 : 2006.07.10 13:55

다르게 읽기 깊이 보기/ 성급한 오리너구리 우화

요즘 우리 학교 도서관은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한쪽에서는 전등을 뜯어내고, 또 한쪽에서는 가벽을 세우고 있어서 위험한데도 아이들은 자꾸만 도서관 쪽을 기웃거린다. 이럴 때 내가 꿈꾸는 사서교사의 모습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질 도서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다리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만권이 넘는 책들을 다시 정비해야 하고, 공사가 잘 되는지도 늘 살펴야 한다.

며칠 전, 역시 공사 현장의 소음 속에서 아저씨들과 소리 높여 얘기하고 있는데 학기초에 잠깐 도서관에 드나들다 말았던 6학년 아이가 기웃거린다. “기말고사도 끝나고, 비도 오고, 할 일이 없어서 와봤더니 도서관도 없네요?” “그러게? 책 쌓아두고 너 기다릴 때는 안 오더니 공사하니까 온다?” “제가 좀 재수가 없어요. 뭐 좀 해볼까 생각하면 항상 안 되더라고요. 시험도 망쳤어요.”

6학년이다 보니 벌써 성적 스트레스가 대단한가보다. 아이는 눈에 띄게 기가 죽어있다. “야, 오리너구리 아냐? 네 생각엔 하나님이 오리랑 너구리랑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동물이겠냐, 아니면 오리너구리 만들고 그 나머지로 오리도 만들고 너구리도 만들었을 것 같냐?”

아이는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옛날에, 오리너구리는 하늘에서 살았대. 봉황이랑 용이랑 함께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 여우가 오리너구리를 놀렸어. ‘너는 오리랑 너구리 만들고 남은 것들로 만들어진 덤이라며?’ 이러면서 말이야.” “찌꺼기로 만든 거 맞네요, 하하.” “봉황은 닭 머리에 뱀 목, 거북이 등 이런 모습이지? 그럼 봉황도 닭이랑 뱀이랑 찌꺼기로 만들었을까? 하여튼 그래서 오리너구리가 하느님한테 막 항의했대. 자기가 신령스러운 동물인 줄 알았더니 덤이었느냐고 말이야.”

아이는 한참동안이나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답을 얘기해줘야지요. 하느님이 덤이래요?” “야, 선생님이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뒷부분이 생각이 안 나네? 내일 도서실로 와. 빌려줄게.”

다시 비오던 날 아이는 나를 찾아왔고, 난 <성급한 오리너구리 우화>를 빌려주었다. 내가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모든 것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아는 것 많아져서 좋고, 시험에서 자신이 약했던 곳을 확인했으니 다행이고, 도서실이 공사중이지만 선생님한테 좋은 책을 추천받아 빌릴 수 있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아이냐고 스스로 생각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 이윤희 글. 파랑새어린이/7천원.


범경화/대전 복수초등학교 사서교사 bkh0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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