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9 17:16
수정 : 2006.07.10 13:55
책꽂이/ 바람은 불어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딪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예측불허다.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부모가 죽거나 이혼하는 일도 언제 닥칠지 모른다. 커가는 것 자체가 힘든데, 거기에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일까지 겹친다면, 아이의 성장통은 더 깊고 심각해질 게 뻔하다.
나우 역시 마찬가지. 그의 성장통의 뿌리에는 게임과 부모의 다툼, 조기유학이 자리하고 있다. 엄마가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확 뽑아 버리자, “에이 씨, 왜 꺼! 만날 소리치고 지랄이야.”라고 막발을 해대고, 프랑스로 떠나고 싶어하는 엄마와 한국에 머물고 싶어하는 아빠가 싸우는 것도 꼴불견이다. 게다가 친구의 교통사고 누명까지 쓰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중산층 이상 가정 아이들이 흔히 겪는 성장통을 대변하는 나우와 달리, 흥곤이는 부모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등 전형적인 빈곤층 가정 아이의 성장통을 상징한다. 유복자로 태어나 재취를 한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외삼촌 집에서 온갖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흥곤이의 삶은 성장통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하는 고문에 가깝다. 엄지 발가락이 나오고 밑창이 닳은 데다 빨아 신지 못해 넝마나 다름없는 구질구질한 자신의 운동화를 보며 울컥 부아가 치밀고, 배가 고파 선생님 책상에 있는 피자를 몰래 훔쳐 화장실에 가서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서로 다른 이유로 주변과 갈등하고 있지만, 두 아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그래서 둘 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치유 해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초등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본 흥곤이 엄마를 찾아 늦은 밤 싸릿골 산속을 헤매는 둘은, 바지 지퍼를 내리고 풀잎들에 오줌을 ‘갈기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싹틔운다.
산속에서 우연히 만난 방송국 피디는 이렇듯 성장해가는 두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는 스스로 아물게 할 수밖에 없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단단한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 속에 새살이 차오르지 않던?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수많은 아픔을 겪게 마련이야. 아파 본 사람만이 남의 아픈 사정도 알고 더 큰 시련이 와도 잘 견뎌 낼 수 있는 거란다.”라고 조언한다. 작가 또한 동화 말미에서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살아가는 것 역시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것을 어린 친구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한다.
나우가 갑자기 교통사고에 연루된 뒤 시골학교로 전학을 가고, 흥곤이와 함게 산을 헤매고 피디를 만나는 대목 등 전체적으로 우연성이 남발된 구성이 흠으라면 흠이다. <바람은 불어도> 김향이 글, 와이 그림. 비룡소/8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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