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9 19:12
수정 : 2006.07.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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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출발선에서 100미터 달리기를 시작해야 공정한 경주가 될 수 있다. 재능과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이처럼 평등한 조건이 전제된 뒤라야 ‘누구나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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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로 잡는 논술
100미터 달리기 경주를 위해 선수들이 모여 있다. 공정한 경기는 선수들 모두가 똑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출발 신호와 함께 선수들은 달리고, 그들의 순위는 연습량과 재능,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과 같은 기타의 이유로 결정된다. 이때 어떤 선수가 출발선에서 20미터 앞에서 출발하고, 또 다른 선수는 20미터 뒤에서 출발한다면, 이 경기를 공정한 경기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헌법 제31조 제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였고, 교육 기본법 제 4조에는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 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성별, 인종, 신앙, 정치성, 경제적 조건 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않고 누구든지 능력에 따라서 교육 받을 수 있다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100미터 달리기로 단순화시켜 보자. 공정한 경주가 되기 위해서는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의 등록금을 마련하고 기타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교육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일하는 학생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도시에 살기 때문에 보다 좋은 교육적 환경에서 효과적인 교육을 누릴 수 있고, 지방에 살기 때문에 다양한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헌법과 교육법에서 제시한 교육 기회의 평등을 위반한 행위이다.
물론 각자의 취미와 능력과 적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강제로 100미터 출발선에 세워 둘 수는 없다. 하지만 경주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이 똑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기초 교육만큼은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도록 국가는 교육적 제도와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초등과 중학교의 의무교육이며 고교 평준화 정책이었다.
이 세상에 똑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육은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평등과 조건이 전제된 다음, 모색해야 하는 것이 능력에 따른 교육의 진행이다. 이것이 헌법에 보장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100미터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교육재정을 분배하여 공정한 100미터 달리기 경주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훈련을 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기록을 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교육이 평등한가’라는 질문은 이런 점에서 유효하다.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 교육은 중학교의 의무교육과 고교 평준화로 형식적으로는 평등을 추구하고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아직도 불평등하다. 형식과 내용의 이 괴리를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국가의 고민이고 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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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산고 철학·논리학 교사,<교과서를 만드는 철학자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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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교육학자 크리스토퍼 헌(Christopher J.Hurn)이 <학교 교육과 사회>에서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결국 개인이 지닌 성별, 인종, 계층 등과 같은 귀속적인 특성이 그들의 상승이동 기회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하며, 대신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은 공명정대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인천 동산고 철학·논리학 교사, <교과서를 만든 철학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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