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27 15:24
수정 : 2005.02.27 15:24
어느덧 종업식 날이다. 같이 지낼 때는 얼른 1년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지나고 나면 1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짧아 허망하다. 길게만 느껴졌던 교장 선생님 말씀이 속절없이 끝나고, 교가도 불렀다. 아이들을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담임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남았는데, 마음이 바쁘다. 어색하고 두려운 시간이다.
아이들 앞에 서기 전에 잠시 숨을 골랐다. 종업식은 봄방학의 시작이니 신이 난 아이들은 내가 서 있어도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았는데, 그냥 힘을 내서 말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 배려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사람마다 제 취향과 성격대로 인정해 주지 못하고 집단으로만 바라보고 야단쳐서 미안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가르치려다 보니까 무리가 많아서 그랬습니다. 내가 한 심한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있으면 이 자리를 빌려서 사과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 진심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다 보니, 공연히 목소리는 떨리고 눈은 조금씩 흐려진다. ‘이 무슨 신파냐’ 하는 생각에 마음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좋은 교사는 못 되어도 나쁜 교사는 되지 않으려 했는데, 생각하니 그 짧은 시간에도 잘못한 일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흐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어느새 교실은 조용해져 있고, 앞자리의 몇 아이는 물기가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진심이 통했구나 싶어 조금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래도 더 말을 이으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분위기를 바꿔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웠다. 앞에 선 남자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 주고, 잘 가라고, 잘 지내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먼저 나를 안으면 이 아이에게는 내가 그래도 잘했구나 싶어 안심하며 그렇게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꼭 껴안고 서 있었다. 얼굴을 내 가슴에 묻고 쌕쌕거리는 아이가 정말 애틋해졌다. 손을 풀며 서로를 보고 씩 웃었다. 참 선한 웃음이다. “선생님도 잘 지내세요”라고 대꾸해 주는 아이에게도 새삼스레 깊은 정이 솟아올랐다. 주저하는 아이나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심드렁한 아이에게는 더욱 더 내 진심을 담아 꼭 안아 주었다. 여자 아이들은 손을 잡았다. 안아 주고 싶지만, 이제는 세상이 사나워져 그게 힘들어져 버렸다. 남자 아이들 안아 주는 걸 보고 자기도 안을까 봐 복도로 도망간 여자아이 몇에게도 따라가서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남아 있을 상처,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풀어 주고 싶었다.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이게 내가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일이다.
김권호/
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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