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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2 15:32 수정 : 2006.07.12 15:41

비리 고발 때문에 징계를 당해 수업을 하지 못하던 동일여고 조연희 교사가 11일 1년 5개월 만에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사립학교법] 동일여고 조연희 교사, 1년 5개월만의 수업 진행

“오늘은 1년 5개월 만의 수업이에요. 매일 아침마다 등교하는 여러분의 예쁜 눈망울을 볼 때마다 같이 공부하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수업을 하니 떨려요, 혹시 틀려도 이해바래요.”

동일학원 비리를 내부고발하다 파면당한 조연희(국어 담당) 교사가 11일 1년 5개월 만에 150여명의 학생들 앞에 섰다. 이름하여 길거리 수업. 긴장된 그의 표정과 달리 그가 준비한 수업 자료엔 수업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할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언젠가는 교실에서 이 맑은 학생들을 가르칠 날을 꿈꾸며’

“내 이름이 뭔지 알아요?”

직위해제 당한 작년부터 한번도 수업을 하지 못했던 조연희 교사가 학생들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이 “조연희 선생님”이라고 외쳤다. 그 이후에 윤동주의 ‘길’을 다같이 읽으며 조연희 교사가 준비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윤동주,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돌아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조연희 교사ⓒ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여기보면 ‘담’은 화자가 넘거나 들어가기에 무척 어려워보이지요?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담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대학이요.” “성적이요.”

“역시 인문계다 보니 성적, 대학이 담으로 짓누르네요. 저에게도 담이 있는데, 뭐일 것 같아요?”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이요.”

“그래요. 교실에서 수업을 못하는 게 ‘담’이었는데,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와준 걸로 그 ‘담’을 넘었어요. 근데 그것 말고도 저에겐 ‘담’이 또 하나 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마음을 다 열고, 100% 수용 못하는 저만의 ‘담’을 허물고 싶어요.”

수업이 진행되자 학생들은 조연희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일부 학생들은 교사가 한 말을 사전에 나누어준 프린트 물에 적었다.

“담을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이 있다면, 이미 그것만으로 담을 넘어선 거에요. 담을 깨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신경림 시인은 ‘문’이라는 시를 통해 담을 깨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말해주었어요. 아무리 높은 담도 자기 마음만 연다면 무너진다는거죠.”

일부 교사들, 학생들 돌려보내 15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참여

사실 이날 수업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당초 7교시까지 하는 학생들을 위해 조 교사는 4시 40분부터 수업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학교 측에서 아무 예고 없이 6교시 단축수업을 진행했다. 동일여고의 한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조연희 선생님 수업을 듣지 못하게 막은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날 단축수업은 교사들도 몰랐고, 학생들도 모르게 갑자기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조연희 교사는 3시 40분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업도 바로 진행될 수 없었다. 동일학원 소속 교사들이 나와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을 돌려보냈기 때문. 하지만 학생들은 교사가 앞에서 막으면 뒤로 돌아가고, 뒤에서 막으면 앞으로 가는 방식으로 길거리 수업 장소로 모였다. 이렇게 해서 모인 1, 2 학년 학생이 150여명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150여명의 학생들이 조연희 교사의 수업을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조연희 교사의 ‘길거리 수업’은 g.o.d의 '길‘을 같이 부르는 것으로 끝났다.

수업을 들은 김진주(고2·가명)양은 “조연희 선생님 수업을 처음 들었는데, 딱딱한 기존 수업과 달라 너무 좋았어요”라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진주양은 “선생님이 방학 끝나면 교실로 돌아가겠다고 저랑 약속했어요”라며 교실에서 볼 조연희 교사의 모습을 기대했다.

박아름(고2·가명)양은 “선생님이 우리 맑은 눈망울을 볼 때마다 같이 공부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우리야 말로 교실에서 선생님의 맑은 눈망울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날 고3들은 7교시 수업을 해서 조연희 교사의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온 조현주(고3·가명)양은 “1학년 이후 선생님 수업을 못들어서 꼭 다시 듣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조연희 교사와 이야기하는 현주양은 눈물을 글썽였다.

“1년 5개월만의 수업, 가장 행복한 수업”

수업을 마친 조연희 교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1년 5개월만의 수업이라 말문이 터질까 고민했는데, 아이들을 보니 옛날 수업하는 것처럼 말이 나와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조 교사는 “보통은 짜여진 수업에 교사가 들어가서 수업을 하는데, 제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오니 기특해요”라며 “제가 했던 수업 중 가장 행복한 수업”이라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조연희 교사의 뒤론 길거리 수업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하나 붙어 있었다. 그 현수막엔 ‘언젠가는 교실에서 이 눈 맑은 학생들을 가르칠 날을 꿈꾸며’라고 적혀있었다.

조연희 교사의 바람처럼 교실은 아니지만, 길거리 수업은 목요일에도 이어진다.

정혜규 기자 66950@hanmail.net
ⓒ2006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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