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30 17:44
수정 : 2006.07.31 18:34
뱀장어 학교
친구를 사귀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아파트에 사는지 연립에 사는지, 강남에 사는지 강북에 사는지, 교수 아들인지 포장마차집 딸인지, 잘 생겼는지 초라하게 생겼는지,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따질 게 너무 많습니다. 부모가 편을 가르고 아이는 그런가 하고 따라갑니다.
이른 아침부터 발가벗고 강가에 나가 뱀장어를 잡는 남호는 내세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생긴 것도 꾀죄죄하고 공부도 못합니다. 결석도 잦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전학온 송이는 남호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남호랑 어울리게 됩니다. 짝궁이 되고, 남호 배에도 탑니다. 남호는 무뚝뚝하고 쌀쌀맞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뱀(사실은 뱀장어)을 잡기도 합니다. 역시나 별볼일 없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지만, 송이는 그런 남호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립니다.
알고 보니 남호는 할머니랑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생활비와 할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뱀장어를 잡아다 팔아야 합니다. 송이는 남호를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던 남호의 사정을 선생님에게 털어놓습니다.
<뱀장어 학교>라는 제목처럼 이후 선생님과 아이들은 남호를 위해 뱀장어를 잡고 학교는 뱀장어 이야기로 술렁댑니다. 드리운 낚시에 뱀장어가 걸릴 때마다 나는 딸랑딸랑 소리가 너무나 훈훈하고 따뜻합니다.
불우한 친구를 위해 돈을 걷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뱀장어 학교’ 아이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단순히 금전적으로 돕는 것은 남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지만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른스럽습니다.
따라서 이 학교 아이들의 사랑은 천번 백번 말로만 외치는 관심과 사랑이 아닙니다.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소외받고 힘들어하는 이웃을 이렇게 대하기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아버지나 어머니 없는 집에 산다고, 지지리 못생겼다고 눈을 흘기는 시대에 ‘뱀장어 학교’ 아이들의 마음은 함부로 흉내내기 어렵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묻어나는 사랑은 남호가 자신의 배 이름을 송이호로 다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첫사랑이라고 부르든, 풋사랑이라고 하든 서로에 대한 이들의 애틋한 마음은 감동적입니다. 평생을 두고 살아도 이런 사랑 한번 해보기 힘든 데, 어린 시절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첨단매체의 홍수와 고도의 산업화·정보화 속에서 사람들간의 소통은 자꾸 메말라가고 있는데, 어떤 세상이 온다 해도 진실한 마음의 소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이 마음과 자연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뱀장어 학교>를 음미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봉지 글, 김홍모 그림. 리젬/8천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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