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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30 18:24 수정 : 2006.07.31 18:36

사이버 세계는 다양한 역할을 실험하는 무대이며, 이미지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심리적 공간이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 청소년들은 사이버 세상의 ‘새로운 자아’ 속에서 더 성장하고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한겨레 자료사진)

삶 사유 논술

# 1. 인터넷을 사용하는 두 마리 개를 그린 아주 유명한 만화가 있다. 한 마리가 다른 개에게 자판을 두들긴다. “인터넷에는 네가 개인 걸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여기에다 “아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라는 문구를 추가해야 하리라. - <디지털이다> 중에서

# 2. 채팅에서 중학교 2학년 김 모군은 ‘여대생’과 채팅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회사원으로 소개했다. “어차피 상관없어요. 저쪽도 진짜가 아닐 수 있으니까.”- <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중에서

컴퓨터를 사주는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의 공부에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을 구입한다. 그래서 채팅이나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갈등의 씨앗이 되곤 한다. “인터넷을 못하게 하다니 감옥같고 숨이 막혀요.” 컴퓨터 사용을 금지당한 한 학생이 자신의 반항 이유를 부모님께 전해 달라고 필자에게 토로하는 모습이다.

어른들에게 컴퓨터는 한낱 노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컴퓨터를 마치 ‘실존의 조건’인 양 절실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한 토끼굴 같은 것은 아닐까. 여행 중인 앨리스는 ‘나는 누구일까’를 수시로 묻는다. 12차례나 몸크기가 바뀌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학생들을 유혹하는 사이버 공간의 매력, 그것은 다양한 변신의 체험에 있다.

한 게임업체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게임에서 사용자는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결혼하고 ‘혈맹’이라는 가족도 만듭니다. 한 편의 인생과 같죠. 매일 5, 6시간씩 게임을 해도 한두 달로는 별로 자신의 신분을 높이지 못합니다. 그만큼 긴 여정입니다. 컴퓨터를 켜면 자신은 잠에서 깨어난 아바타가 됩니다. 말 그대로 아바타는 자기 자신의 살아 있는 분신으로 변해가는 겁니다.”(‘사이버 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중에서)

학생들은 아바타를 치장하기 위해 용돈을 모아 과감하게 지출한다. 이모티콘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완전소중예쁜걸’과 ‘김태희’가 된다. 머리 감는 일은 넘길 수 있지만 미니홈피 관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사이버 세계는 다양한 역할을 실험하는 무대이며, 이미지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심리적 공간인 셈이다.


근대 이후 ‘나’에 대한 인식은 데카르트에서 시작한다. 데카르트가 탐구한 ‘나’는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정신’과 물리적 공간안에 존재하는 ‘육체’로 이루어진 단일체였다. 그때부터 철학은 정신과 육체를 탐구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정신을 이론이성, 도덕이성, 예술이성으로 세분화했던 칸트나, 이성보다는 감성의 우위를 강조했던 쇼펜하우어(또는 니체)도 같은 트랙의 다른 라인에서 뛰었던 학자들일 뿐이다. 모두 현실에서 살아가는 ‘단일한 인간’의 자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나’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 사이버 공간의 대표적 특성으로 ‘익명성’을 꼽지만, 사실 투명인간이 된 것은 육체만이다. 오히려 하나의 몸에 9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처럼 복합적 정체성을 스스럼이 만끽한다. 전사가 되고, 시사평론가가 되고,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어 현실보다 많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원하던 어떤 사람으로 자유롭게 넘나들 뿐이다.

‘미디어의 이해’에서 마셜 맥루한은 티비나 신문 등의 미디어를 단순히 도구로만 보지 않았다. 미디어는 인간의 신체를 확장해 주고 그 자체가 인간이 일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책은 눈의 확장이고, 자동차와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다. 옷과 집은 피부의 확장이고, 텔레비전은 시각·청각·촉각의 확장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인간 대뇌 속에 있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미디어는 곧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진 메시지이다. 인간의 신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듯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미디어 자체가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맥루한의 조언을 듣자면, 인터넷으로 형성된 사이버 네트워크는 새로운 국면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육체의 확장을 넘어 자아의 확장, 곧 정체성의 복합을 가능케 하는 확장이다. 나를 비춰주던 거울이 스스로 공간을 창출하여 그 속의 인간이 더 생생하고 자유롭게 활동한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실제 삶보다 더 유연하고 풍부한 삶을 누리게 하는 곳. 그곳의 자유는 상상과 변신과 이동과 교류의 모든 벽을 없애고 있다.

청소년들은 정체성 형성이 최대 과제인 사람들이다. 청소년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겪었는가. 현실로 돌아와야 했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우리도 모두 밥 먹어야 할 몸이 있는 이 곳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새로운 자아 속에서 더 성장하고 자유로와졌는지 마음 속 주인에게 대답하길 바란다.

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채팅에서 사용했던 나의 닉네임을 떠올리며 그 때의 느낌과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2. 옷이나 머리는 개성을 나타내지만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나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나의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자.

3. 컴퓨터 게임에서 배우게 된 좋은 점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4. 인터넷을 오래하고 난 후, 몸과 마음의 상태가 어땠는지 이야기해 보자.

5. 사이버 공간에서 가장 기뻤을 때와 우울했을 때를 떠올려 보고 그 상황과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6. 학교 수업에서는 토론과 질문이 흔하지 않다. 그런데, 사이버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토론과 질문을 적극 권장한다. 학생들의 실제 반응을 분류하고 그런 반응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 현상과 본질의 관계를 살피려면?

‘더 많은 사례는 없을까?’와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를 사용해 보세요. 현실의 모습을 꼼꼼하게 따져 보고 공통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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