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30 21:23
수정 : 2006.07.31 18:39
골목길서 뛰쳐나와 들판으로 가련다
김푸른샘/한국외대부속외고 1학년
학교에 입학한 지 넉 달이 넘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질주해온 시간이었다. 무심코 도덕 숙제 앞에서 급정거해서 잠시 돌아본다. 중학교 때 한국현대문학사 시간에 들었던 이상의 ‘오감도의 13인의 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의 구절이 실감나는 몇 달이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옆을 볼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날, 갑자기 날아든 도덕 숙제는 참 당혹스럽다.
예절의 처음과 끝은 겸손함이며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배웠던가? 그리고 예절의 처음은 감사함이라고 <예기>에 있었던가? 자신의 한 몸도 가누지 못해 끌며 끌려 다니던 시간의 연장 속에서 난 스승께 감사의 마음을 거의 갖지 않았으며 친구에게 친절하지 않았으며 부모님께도 감사함 대신 늘 짜증을 바쳤으며 매점 아주머니에게도 기숙사의 여러분께도 감사함을 느끼지 않았다. 수업 시간엔 지쳐서 잘 때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시간을 잡아 자면서 선생님을 모독했으며 ‘중학교 선생님들보다 실력은 많으신 것 같지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마음 속 투정까지 부린 적도 있었다. 열강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을 귀담아 듣기도 했지만 아무렇게나 버린 시간도 더러 있었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진정으로 갖지 않았다. 친구를 친구라고 여기기 전부터 경쟁자로(!) 의식해서 견제할 때가 많았고 전학을 가는 반 친구들을 보며 한편으론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런 감정을 거추장스러워하기도 했다. 매점 아주머니 그리고 기숙사, 식당의 여러분들은 길거리에 그냥 지나치는 사물과도 같은 관계였다.
이제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지는 않으련다. 도덕 숙제를 하다 돌아 본 지난 몇 달이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돌려본 적도 없이 입시 제도, 학교, 부모님, 선생님께 무조건 덮어씌운 것은 잘한 것인가? 나 자신, 정말 최선의 행동을 했던가? 나 자신은 ‘예기’에 들어 있는 말처럼 ‘예가 없어서 위태로운’상황이다. 상황이었다.
이제 부끄러움을 감사함과 겸손함으로 전환하고 싶다. 자신의 생활을 잘 관리하여 수업 시간엔 바르고 초롱초롱한 자세로 수업에 임할 것이다. 졸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고 인간답게 성숙시키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고마움으로 귀담아들을 것이다. 똑똑하고 개성이 강한 친구들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께도 한번이라도 웃으면서 감사함을 먼저 전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덕을 올바로 행하는 것이고, 나의 본분과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고통의 과제를 내주셔서, 막다른 골목에서 뛰쳐나와 들판에서 잠시나마 쉬게 하신 도덕 선생님께는 개학 날, 더운 날의 생명수 같은 음료수로 나의 푸른 마음을 전하고 싶다.
평
감사함으로 돌아보는 모습, 아름다워
기말고사 끝나고 널부러진 아이들, 지친 아이들 모습 보며 그냥 지쳐가고 있어요. 여름살이가 참 힘들군요. 선풍기 밑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여러 번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지도 않는 아이들. 급식이 나와야 겨우 살아 움직이는 모습 볼 수 있네요. 이제 위 학생처럼 감사함으로 정리할 시간인 듯 싶어요. 이 글에는 도덕시간에 배운 지식과 나의 삶을 대비하며 성찰하는 진지함과 반성이 담겨 있어 읽는 이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여러분도 친구와 그만 투닥거리고 힘을 모아 방학의 그날까지 버티어 나가기로 해요. 감사함으로 살아가기로 해요.
정미영/서울염창중 교사, 서울국어교사모임 회원 saemnuri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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