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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고영진 교수, 이명원 문학평론가,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왼쪽부터)이 학계의 연구 관행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윤종규 인턴기자 (중앙대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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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기준으로 성과 평가하는 구조가 문제”
“특수대학원 논문 분석해보면 충격적일 것”
“자정노력 안해…교육부가 연구비 검증을”
‘논문 표절·중복게재’ 학계 관행과 결별을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논란과 중복 게재, 두뇌한국21 사업을 둘러싼 잇따른 논란 끝에 물러났다. 2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학자들이 교육부 수장을 낙마시킨 이번 논란이 학계와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과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홍종학:학문의 양적 팽창에서 오는 부작용이 지난해에는 황우석 교수 사태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터지고, 이번에는 김병준 부총리 사태로 사회과학에서 불거진 거다. 우리 학계를 위해 반가운 일이다. 교육부가 어느 학교에서 논문을 몇 개 발표했냐는 식의 양적 기준으로 대학의 성과를 평가하는 동기부여 구조가 문제다. 양적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대학은 교내 학술지 이중 게재를 허용하고, 교수들도 이중게재와 같은 실적 부풀리기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학에서 세계의 유명 저널에 논문 30개를 낸 연구자와 3개를 실은 연구자를 놓고 심사를 해서 3개를 낸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하는 걸 봤다. 양이 아니라 질적 평가를 했기 때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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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번에 김병준 부총리 사태에서 전 성북구청장의 학위 문제가 나왔지만, 이른바 특수대학원에서 양산되는 논문들 상당수가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논문을 쓸 때 그런 논문들을 인용하지 말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베껴쓴 경우가 많아 자칫 자기도 모르게 원저자의 논문을 표절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해 100여명씩 석·박사를 배출하는 특수대학원의 논문들을 분석해 보면 아주 충격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대학이 학위를 남발하는 이른바 ‘지식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표절해서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경향이 심해졌다. 홍:표절이나 중복게재는 업적 푸풀리기로 끝나지 않고 대학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짜집기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교수가 되고 그 교수들이 이른바 ‘학위장사’를 서슴지 않게된다. 그런 교수들이 연구비를 잘 따오고 학교에서 인정받아 제자들을 이끄는 교수가 된다. 주변에 그런 교수들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는 덜 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 연구비 횡령이 거리낌없이 이뤄지는 거다. 문제는 교수들 스스로 이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엉터리 학위를 받은 상당수 정치인들도 대학의 연구개발이 중요하다고만 하지 철저한 관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연구자가 연구비는 자율적으로 쓰도록 하되 그에 대한 검증은 교육부가 나서서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고: 장기적으로 학계 자율에 맡기는 게 맞지만, 단기적으로는 국가가 나서서 표절·중복게재, 연구비 관리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학문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세우자는 것이다. 이: 학계에서 부조리가 드러나면 당사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용감하게 문제제기를 한 공익제보자는 학계에서 설 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다. 연구윤리나 표절이 문제되면 언론이 반짝 관심을 보이고 대안없는 토론을 할 게 아니라 연구에 비리가 있다면 처벌할 수 있는 기준과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 홍:양적 평가에서 벗어나 학문의 내용을 평가하는 잣대를 정착시켜 학벌 문화까지 깨뜨려야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가 평가받을 수 있고, 결국 대학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이른바 ‘정치 교수’ 문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 학자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기준이 다르듯이 학자와 정치인 사이에 경계를 뚜렷이 해야 한다. 관료나 정치인이 되려는 교수들은 교수직을 포기해야 한다. 고:중복 싣기나 베끼기 문제가 불거지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한다. 전반적으로 너무 뻔뻔해지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 특히 사회지도층 일수록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사회 허미경 기자, 정리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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