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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2 20:21 수정 : 2006.08.02 20:21

2일 오전 고영진 교수, 이명원 문학평론가, 홍종학 경실련 정책위원장(왼쪽부터)이 학계의 연구 관행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윤종규 인턴기자 (중앙대사진 4)

“양적기준으로 성과 평가하는 구조가 문제”
“특수대학원 논문 분석해보면 충격적일 것”
“자정노력 안해…교육부가 연구비 검증을”

‘논문 표절·중복게재’ 학계 관행과 결별을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논란과 중복 게재, 두뇌한국21 사업을 둘러싼 잇따른 논란 끝에 물러났다. 2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학자들이 교육부 수장을 낙마시킨 이번 논란이 학계와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과 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홍종학:학문의 양적 팽창에서 오는 부작용이 지난해에는 황우석 교수 사태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터지고, 이번에는 김병준 부총리 사태로 사회과학에서 불거진 거다. 우리 학계를 위해 반가운 일이다. 교육부가 어느 학교에서 논문을 몇 개 발표했냐는 식의 양적 기준으로 대학의 성과를 평가하는 동기부여 구조가 문제다. 양적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대학은 교내 학술지 이중 게재를 허용하고, 교수들도 이중게재와 같은 실적 부풀리기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학에서 세계의 유명 저널에 논문 30개를 낸 연구자와 3개를 실은 연구자를 놓고 심사를 해서 3개를 낸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하는 걸 봤다. 양이 아니라 질적 평가를 했기 때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고영진:업적에 따라 연구비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소속 대학이나 연구소의 사활을 걸고 있다. 법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중복 게재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연구 지원에 대한 자격조건이 까다로워지다보니 그 기준에 맞추려고 입맛에 맞는 연구를 찍어내고, 호흡이 긴 학문적 성과를 내기에 척박한 구조다. 학술분야 뿐 아니라 참여정부에서 모든 기관에 ‘평가’가 중심이 되다보니 행정학 교수들이 각 기관평가를 맡게 됐다. 이른바 ‘행정학 특수’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이명원: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두뇌한국21 사업을 두고 일종의 ‘취로사업’이라고 한다. 정부가 대학에 진입하지 못한 박사들을 실업상태로 둘 수 없어서 학문적 외피를 두른 취로사업을 시킨다는 얘기다. 연구자들이 생계수단으로 연구를 하다보니 자신의 관심과 상관없이 연구팀에 합류해서 정책과 연관된 주제를 잡고 연구를 한다. 실제 데이터 조사나 행정업무, 집필까지 박사급 연구원들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의 최종 성과는 교수들에게 돌아간다. 교수들 역시 학문적 필요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제자들을 먹여 살리려고 두뇌한국21 같은 사업에 뛰어들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양적인 성과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다.

: 표절이나 중복게재의 기준이 역사·철학 등 사료를 직접 다루는 학문에서는 좀 다른 것 같다. 역사학에서는 자신이 창작하지 않은 모든 글에는 각주에 출처를 밝히게 돼있다. 그러지 않으면 전부 표절로 본다. 한 연구자가 비슷한 주제로 다시 논문을 쓰면서 원 사료들이 같은데 문장만 다르게 쓰는 경우도 표절이냐를 놓고 학술지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응용학문은 기존 논문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기 때문에 일일이 각주를 달지 않고, 논문 끝에 참고문헌만 밝히는 경우가 많다. 대학 소속이 관광학부라서 관련 책을 몇 권 찾다가 깜짝 놀랐다. 책 7~8권이 내용이 다 비슷한데 참고문헌만 밝혀두고 각주를 전혀 달지 않았다. 서로 베껴서 최초의 원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교내 논문집이라 하더라도 중복 게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제목만 바꿔서 싣는다는 것은 학자적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학문별로 표절이나 중복 게재에 대한 기준이 있다. 다만 우리 사회에 표절과 중복 게재 여부를 명확하게 가려서 판단할 권위있는 기구가 없을 뿐이다. 이번에도 ‘제자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졌을 때 권위있는 기관이 신속하게 판단을 내려줬어야 했다. 표절과 표절이 아닌 것, 그 경계에 있는 논문을 뚜렷하게 가려서 표절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권위있는 기구를 만들어 명확한 기준에 따라 표절을 한 연구자를 엄격하게 처벌한다면 표절·이중게재는 막을 수 있다.


: 이번에 김병준 부총리 사태에서 전 성북구청장의 학위 문제가 나왔지만, 이른바 특수대학원에서 양산되는 논문들 상당수가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논문을 쓸 때 그런 논문들을 인용하지 말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베껴쓴 경우가 많아 자칫 자기도 모르게 원저자의 논문을 표절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 해 100여명씩 석·박사를 배출하는 특수대학원의 논문들을 분석해 보면 아주 충격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대학이 학위를 남발하는 이른바 ‘지식사업’에 열을 올리면서 표절해서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경향이 심해졌다.

:표절이나 중복게재는 업적 푸풀리기로 끝나지 않고 대학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짜집기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교수가 되고 그 교수들이 이른바 ‘학위장사’를 서슴지 않게된다. 그런 교수들이 연구비를 잘 따오고 학교에서 인정받아 제자들을 이끄는 교수가 된다. 주변에 그런 교수들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는 덜 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 연구비 횡령이 거리낌없이 이뤄지는 거다. 문제는 교수들 스스로 이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엉터리 학위를 받은 상당수 정치인들도 대학의 연구개발이 중요하다고만 하지 철저한 관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연구자가 연구비는 자율적으로 쓰도록 하되 그에 대한 검증은 교육부가 나서서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

: 장기적으로 학계 자율에 맡기는 게 맞지만, 단기적으로는 국가가 나서서 표절·중복게재, 연구비 관리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학문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세우자는 것이다.

: 학계에서 부조리가 드러나면 당사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용감하게 문제제기를 한 공익제보자는 학계에서 설 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다. 연구윤리나 표절이 문제되면 언론이 반짝 관심을 보이고 대안없는 토론을 할 게 아니라 연구에 비리가 있다면 처벌할 수 있는 기준과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

:양적 평가에서 벗어나 학문의 내용을 평가하는 잣대를 정착시켜 학벌 문화까지 깨뜨려야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연구자가 평가받을 수 있고, 결국 대학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른바 ‘정치 교수’ 문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 학자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기준이 다르듯이 학자와 정치인 사이에 경계를 뚜렷이 해야 한다. 관료나 정치인이 되려는 교수들은 교수직을 포기해야 한다.

:중복 싣기나 베끼기 문제가 불거지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한다. 전반적으로 너무 뻔뻔해지지 않았나 돌아봐야 한다. 특히 사회지도층 일수록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사회 허미경 기자, 정리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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