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 위원, 60대 남성·교육경력자 여전히 압도적
학운위원 폐쇄적 간접선거 ‘물갈이’ 가로막아
견제기능 무력화 우려…“주민 직선제 도입해야“
‘퇴직 교육관료들의 사랑방’, ‘그들만의 잔치’.
교육위원 선거에는 이런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지난 31일 치러진 5기 교육위원 선거에서도 구태는 반복됐다. 패거리식 선거 운동이 여전했고, 새 얼굴의 진입은 막혔다. 이참에 불합리한 교육위원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선자 면면 살펴보니= 5기 교육위원 당선자들의 주류는 단연 ‘60대 남성 교육관료’들이다. 132명의 당선자 가운데 나이가 60대인 이가 73.5%를 차지했다. 40대는 9명(6.8%)에 불과했고, 여성 당선자는 3명(2.3%)에 그쳤다. 교원과 교육공무원 등 교육 경력자가 88.6%나 됐다. 2002년 4기 선거 때(80.8%)보다 오히려 ‘순혈주의’ 색채가 더 짙어진 것이다. 지역 교육청 수장인 교육장 출신이 50명이나 됐으며, 교장 출신이 23명,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 간부 출신이 8명이었다. 전체 당선자에서 이들 전·현직 교육관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61.4%에 이른다. 특히 교장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직 교육장 신분으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이 12명이며, 현직 교장도 10명이 당선됐다. 전북에서는 9명의 교육위원 당선자 가운데 현직 교육장이 4명, 전직 교육장이 2명이나 됐다.
폐쇄적인 선거제도가 문제= 교육위원 선거가 이처럼 ‘집안 잔치’로 전락한 원인은 폐쇄적인 선거제도 때문이다. 소수의 학교운영위원들로만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간접선거 방식은 조직선거, 인맥·학맥 선거의 자양분이 됐다. 특히 적지 않은 학교에서 학운위가 교장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있는 현실에서, 간접선거 방식은 교장의 특정인 지지 유도와 표 몰아주기에 악용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명기 서울시교육위원(서울교대 교수)은 “교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폐쇄적인 선거 방식은 ‘물갈이’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교육관료들이 유권자인 교장을 비롯한 학운위원들을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데 견줘, 비경력 후보들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견제 기능 무력화 우려= 교육위원은 시·도의회에 제출할 조례안, 예·결산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의결하고, 교육감의 행정사무에 대한 감사 및 조사를 담당하는 기구다. ‘교육계의 국회의원’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전교조 쪽 후보가 대거 낙선하고 교육관료 출신들이 득세함에 따라 교육위원회가 견제 구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공정택 교육감의 ‘학력 신장 지상주의’ 교육정책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도 개선 목소리= 선거 방식을 직접선거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윤지희 교육과시민사회 공동대표는 “현재 방식으로는 교육 주체들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며 “조직과 인맥을 앞세운 패거리 선거를 통해 교육위원회가 보수적인 교육관료와 특정 교원집단 등 교육 기득권 세력에게 장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주민 직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거구별로 교육위원 정수의 절반은 반드시 교육 경력자를 우선 당선시키도록 한 규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현옥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교육 경력이 없는 사람은 교육위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교육감·교육위원 직선제와 후보자 자격 제한 완화 등을 뼈대로 하는 여·야 의원들의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 5건이 계류돼 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참패한 전교조 “자성부터 먼저”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가자” 목소리 높아
“저소득층 교육지원·자정운동 더 열심히” 전교조 지지 후보들이 5기 교육위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전교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7명의 지지 후보를 냈으나 2명이 당선되는 데 그친 전교조 서울지부의 유경수 교선국장은 “패배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우리 안에서 찾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보수세력의 색깔 공세가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공세가 왜 그렇게 쉽게 먹히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국민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지부는 새로운 참교육 실천 운동의 하나로 지난 6월부터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와 함께 시작한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 상담, 문화활동 지원 사업을 2학기부터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번 선거에서 전교조 지지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박명기 서울시교육위원(서울교대 교수)는 “이번 선거를 전교조의 활동방식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며 “한 가지 현안을 둘러싼 투쟁에 모든 걸 다 거는 운동방식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4명의 지지 후보가 출마했으나 완패한 전교조 전북지부는 선거 다음날인 1일 “아번 선거 결과가 일선 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을 강력하게 실천하기를 바라는 도민들의 질책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드리겠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김한명 정책실장은 “지난 5월15일 스스의날을 맞아 선언했던 부교재 채택료 거부 등 자정운동과 참교육 실천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교조 지지 후보로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은 “우리만 정당하다면 그냥 밀고 나가면 된다는 식의 대응 방식으로는 유권자인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다”며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너무 원칙에만 매달리다 보면 동료 교사들한테서도 ‘옳지만 밉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부모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운동 사례로 전교조 경남지부가 지난 4월부터 펴오고 있는 고교 교사 부교재 채택료 거부 선언과 범도민 차원의 부교재 값 인하 운동을 꼽았다. 전교조 쪽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한 이번 선거에서, 경남에서는 오히려 2002년 선거 때보다 전교조 지지 후보 당선자가 한 명 더 늘어 2명이 당선된 것도 이런 운동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박 위원의 생각이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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