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0 16:52
수정 : 2006.08.21 09:51
논리로 키우는 논술 내공
꿩은 다급하면 머리를 풀숲에 처박는단다. 자기 눈에 세상이 안보이면, 세상도 자기를 못 볼 것이라 여겨서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꿩 같은 논리’로 살아가는 이들이 꽤 많다.
사람들은 들어야 할 말보다는 듣고 싶은 말에 더 혹하기 마련이다. 아부가 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재자들은 다급한 현실을 꼬집는 충언(忠言)보다는 간신배들의 달콤한 찬사에 마음이 쏠리기 쉽다.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벗보다,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탕발림하는 친구가 되레 더 환영받는 법이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어린아이같이 자기 원하는 데로만 하자고 떼쓰는 사람은 주변을 피곤하게 한다. 우리는 이런 이들을 ‘독선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한다. 더 심한 이들은 아예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산다. 누구도 자기 말을 들으려 하지 않지만, 이네들을 꿋꿋하게 홀로 떠드는 뚝심을 과시하곤 한다. 이런 이들은 결국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여겨질 뿐이다. 혹시 이런 ‘경지’에 다다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없을 터다. 이런 이들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성장과 발전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냉철한 논리를 세울 수 있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혹시 자신이 나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하지는 않은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얼마나 객관적인지를 다음 질문을 통해 진단해 보자.
“내가 들이대는 이유(근거)들이 나에게 절실한가, 상대에게 절실한가?”
전화로 병원에 급히 진료 예약을 하려 하는데, “퇴근 시간이라 오늘은 어렵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해보자. 여기에 “제가 병원까지 가는 데는 10분밖에 안 걸리는 데요.”라며 사정했다면, 과연 이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10분 안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이유’는, 나에게는 늦은 시각임에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렇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어떨까? 러시아워 시간이라 만약 의사가 10분 늦게 퇴근하면 집에 가는 데 한 시간 이상 더 걸리는 처지에 있다면? 환자에게는 그럴 듯한 이유일지라도 의사에게는 별 설득력 없는 근거로 여겨질 뿐이다.
‘스토커’들은 바로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치곤 한다. 그네들은 자신의 절절한 마음이 상대가 자기를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고 믿는다.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관심을 끌려고 하는 행동도 사랑의 표현일 뿐 괴롭힘이 아니라며 고집을 부린다. 이토록 애끓고도 소중한 나의 감정이 어떻게 상대에게 두려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성숙한 사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상대의 눈에 자신의 행동에 거스르는 점은 없는지 끊임없이 반성하며 어떻게 처신할 지를 꼼꼼히 점검한다. 건전한 논리를 갖춘 사람도 그렇다. 이들은 자기 속에서 근거와 이유를 찾지 않고 상대의 마음과 처지를 헤아릴 줄 안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진정 설득력 있는 ‘논리 객관성’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남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을 갖췄다면, 이제 내 주장과 근거가 누구에게나 통하는지를 짚어야 할 차례다. 이를 논리학자들은 ‘보편화(universalization) 검사'라고 한다. 이렇게 되물어보라.
“나와 ‘우리’의 주장이 누구에게나 다 설득력 있게 들릴까?”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끼리는 확실하게 공감할지라도 남들에게는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집단 이기주의, 님비(NIMBY)에 빠진 집단을 설득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좀 더 집값을 후하게 받겠다는 데 반대할 주민은 없다. 그래서 담합도 쉽게 이루어진다. 나라 전체로 볼 때 이들의 행동은 옳은가? 주민들 외에 사람들이 그네들의 행동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할까? 물론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주장일수록, 보다 합리적이면서도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안이다.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은 바로 이 점에서 두드러진다. 무엇이건 의견을 세웠다면 수없이 듣고 이야기 하라.
|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
상대의 그럴듯한 반론은 수긍하고, 잘못된 점들은 고쳐나가 보자. 이런 과정을 더 많이 거치면 거칠수록, 주장과 근거에 담긴 편견은 더 많이 증발해 버릴 터다.
논리는 햇볕과 같다. 더 강한 빛이 세균을 확실하게 없애듯, 여럿이 머리를 모은 논리는 오류와 편견을 더욱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누구에게나 통하는 주장과 근거를 찾아내는 ‘논리 객관성’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제대로 갖출 수 있다.
<뇌를 깨우는 논리 체조>
“내 인생의 10대 사건”을 적어봅시다. 그리고 부모님께 나를 키우면서 의미 있었던 10대 사건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려봅시다. 이 둘을 비교해 보세요. 일치하는 내용이 얼마나 됩니까? 다른 내용은 없는지요? 다르다면 왜 그런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체조방법>
“네 인생의 10대 사건”을 적다보면, 내 안에 숨어있던 편견이 튀어 나오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는 10대 사건의 절반 이상이 친구에 대한 일들로 채워지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공부에 대한 사상이 대부분을 차지하곤 하지요. 이렇듯 삶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사건들은 서로 다르기 마련입니다. 나는 어떤 주장과 관심에 민감할까요? 부모님은 또 어떤지요? 부모님과 자신이 적어놓은 10대 사건이 많이 다르다면, 왜 그런지 진지하게 논의해 보세요. 서로의 관심을 확인해 가는 가운데, 갈등 해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