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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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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휴대전화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광고 모델의 이미지를 구매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을 다른 이와 ‘구별짓기’위해 특정한 광고 모델을 선택하지만, 그 순간 개인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따라하기’의 역설이 시작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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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사실 어느 제품에나 적용될 수 있다. 긴 치마를 입다가 짧은 치마를 입는 행위, 폭이 좁은 넥타이를 매다가 넓은 것으로 바꾸는 행위, 동급의 자동차인데도 신형 모델로 구입하는 행위들도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정상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패션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 광고가 이 모든 행위를 돕는다. 오닐(O'Neil)의 말처럼 “소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원하는 것을 원하게 가르치는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부단한 소비 행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욕망, 그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따라하기’와 ‘구별짓기’이다. ‘따라하기’와 ‘구별짓기’는 서로 배반적인 양상이지만, 소비 자본주의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따라하기’는 집단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통합된 안정감을 준다. 청소년들은 특히 사회적 관계 형성기에 있는 존재이므로 더더욱 소외에 예민한 감정상태를 갖는다. 소비를 통해 마음의 가난을 가릴 수 있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과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특징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더욱 유행에 민감하도록 부추기는 배경이 된다. 반면 ‘구별짓기’는 차이를 통해 남들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나의 몸과 늘 함께 있는 휴대폰은 나의 특징을 더 잘 보여준다. 그래서 디자인은 휴대폰 구입에서 고려하는 첫째 요건이다. 유행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듯 휴대폰도 슬라이드폰에서 슬림폰으로, 슬림폰에서 DMB 폰으로 바꾸어야 한다. 휴대폰의 교체주기가 짧아지는 이유도 결국 상품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사회적 지위와 위신을 드러내는 ‘사회적 차이의 소비’ 탓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무의식적 취향이 개인의 선택이라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자본을 통해 ‘구별짓기’의 현상을 분석한 부르디외의 설명을 떠올려보자. 축구보다는 골프를 즐기고, 브레이크 댄스보다는 발레를 즐기는 사람들의 취향은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것들을 소화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가치를 향유하도록 내면화시킨 결과 덕분이다. 취향의 차이는 그 사람이 속한 계층(계급)의 문화적 배경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별짓기’는 ‘따라잡기’의 문화 현상을 수반한다. 200만원 이상을 호가했던 과거의 휴대폰은 상류층의 구별짓기 욕망을 만족시켜주었지만, 지금의 휴대폰은 아무리 비싸도 80만원을 넘지 않는다. 비상류층의 따라잡기가 가능해진 휴대폰은 계속해서 새로운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분화중이다. 정체성이 코드가 소비의 확대로 이어진다. “내 휴대폰이 고장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학생들의 욕망은 다시금 출렁인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냉담과 침묵’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늘 손가락이 바쁜 학생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지는 오늘이다. * 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유행하는 옷을 입으면 더 기분이 좋아지는가? 이유를 말해보자. 2. 명품이라 불리는 상품을 떠올려보고 그것이 정당한 지 평가해 보자. 3. 덜 소비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유를 말해보자. 4.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의 취향을 확인한 후 위축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5. 미국의 갑부들은 적극적인 기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보자. * 함축된 의미를 살피려면? ‘그런 행동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 일어날까?’와 ‘A를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면, B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사용해 보세요. 불분명한 주장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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