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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7 17:27 수정 : 2006.08.28 13:16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삶, 사유, 그리고 논술

교단에 선 교사가 학생들을 부른다. 고개를 들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이들. 장황한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아이들의 두 손은 책상 아래에서 바쁘다. 휴대폰 자판을 외운 덕분이다. 몸은 교실에 있으되 마음은 언제나 ‘교제 중’이다. 수면 아래 분주한 발동작을 숨기고 겉으로는 언제나 우아한 백조들처럼.

학생들이 체감하는 가장 무서운 처벌은 ‘휴대폰 압수’다. 체벌보다, 반성문보다 휴대폰은 힘이 세다. 그 뿐이랴. 휴대폰 없이 집을 나서면 하루가 불편하고, 휴대폰을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는가 여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인간관계 복원을 위한 후유증이 따른다. ‘휴대폰과 분리된 나’는 존재의 불안감을 겪는다. 불과 10여 년 사이의 일이다.

우리 학생들은 휴대폰의 진화와 함께 성장한 세대들이다. 문자서비스, 벨소리화음, 디지털 카메라, MP3 등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욕망은 증가하고 적응도 빠르다. 어느 시대에나 청소년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것을 빨리 흡수해왔지만, 휴대폰에 이르면 그 정도가 각별하다. ‘멋있는 휴대폰을 쥐고 있는 나’는 곧 ‘살아있는 나’이다.

소비자들은 휴대전화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광고 모델의 이미지를 구매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을 다른 이와 ‘구별짓기’위해 특정한 광고 모델을 선택하지만, 그 순간 개인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따라하기’의 역설이 시작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휴대폰은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구매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소비재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76%(2004년 기준)가 소유하고 있어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는데도 휴대폰 시장 규모는 날로 커간다. 자기표현의 아이콘으로 여기는 청소년층의 집단적인 감성 탓이다.

“친구들이 새로운 휴대폰을 사면 부러운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나도 새로 사면 자랑하고 싶어요. 비록 1달짜리 자랑이지만.” 휴대폰을 살 때 학생들이 얻는 것은 전화기가 아니라 자기 연출의 욕구충족이다. 고장 나지 않은 멀쩡한 기계인데도 언제든지 기계를 바꿀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다. 자본은 스타들을 동원한 광고를 통해 휴대폰에 행복을 입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사실, 늘어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를 향한 압박감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소비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보드리야르의 지적은 관심을 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상품의 사용가치라기 보다는 상징적인 기호라고 지적한다. LG 휴대폰 사용자는 김태희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삼성 애니콜 사용자는 이효리의 이미지를 구매한다. “자기를 타자와 구별하는 것은 바로 어느 한 모델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실제적인 모든 차이와 특이성을 포기한다.” 자기표현을 위해 선별해서 구입한 아름다운 모델의 이미지가 개인의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역설을 낳는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차이화의 기적이며 비극”이라 진단한다.


이런 현상은 사실 어느 제품에나 적용될 수 있다. 긴 치마를 입다가 짧은 치마를 입는 행위, 폭이 좁은 넥타이를 매다가 넓은 것으로 바꾸는 행위, 동급의 자동차인데도 신형 모델로 구입하는 행위들도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정상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패션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 광고가 이 모든 행위를 돕는다. 오닐(O'Neil)의 말처럼 “소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원하는 것을 원하게 가르치는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렇게 부단한 소비 행위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는 욕망, 그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따라하기’와 ‘구별짓기’이다. ‘따라하기’와 ‘구별짓기’는 서로 배반적인 양상이지만, 소비 자본주의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따라하기’는 집단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과 통합된 안정감을 준다. 청소년들은 특히 사회적 관계 형성기에 있는 존재이므로 더더욱 소외에 예민한 감정상태를 갖는다. 소비를 통해 마음의 가난을 가릴 수 있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과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특징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더욱 유행에 민감하도록 부추기는 배경이 된다.

반면 ‘구별짓기’는 차이를 통해 남들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나의 몸과 늘 함께 있는 휴대폰은 나의 특징을 더 잘 보여준다. 그래서 디자인은 휴대폰 구입에서 고려하는 첫째 요건이다. 유행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듯 휴대폰도 슬라이드폰에서 슬림폰으로, 슬림폰에서 DMB 폰으로 바꾸어야 한다. 휴대폰의 교체주기가 짧아지는 이유도 결국 상품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사회적 지위와 위신을 드러내는 ‘사회적 차이의 소비’ 탓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무의식적 취향이 개인의 선택이라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자본을 통해 ‘구별짓기’의 현상을 분석한 부르디외의 설명을 떠올려보자. 축구보다는 골프를 즐기고, 브레이크 댄스보다는 발레를 즐기는 사람들의 취향은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것들을 소화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가치를 향유하도록 내면화시킨 결과 덕분이다. 취향의 차이는 그 사람이 속한 계층(계급)의 문화적 배경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별짓기’는 ‘따라잡기’의 문화 현상을 수반한다. 200만원 이상을 호가했던 과거의 휴대폰은 상류층의 구별짓기 욕망을 만족시켜주었지만, 지금의 휴대폰은 아무리 비싸도 80만원을 넘지 않는다. 비상류층의 따라잡기가 가능해진 휴대폰은 계속해서 새로운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분화중이다. 정체성이 코드가 소비의 확대로 이어진다. “내 휴대폰이 고장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학생들의 욕망은 다시금 출렁인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냉담과 침묵’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늘 손가락이 바쁜 학생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지는 오늘이다.

* 하루 하나씩 친구와 나누는 20분간의 대화

1. 유행하는 옷을 입으면 더 기분이 좋아지는가? 이유를 말해보자.

2. 명품이라 불리는 상품을 떠올려보고 그것이 정당한 지 평가해 보자.

3. 덜 소비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유를 말해보자.

4.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나의 취향을 확인한 후 위축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5. 미국의 갑부들은 적극적인 기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들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말해 보자.

* 함축된 의미를 살피려면?

‘그런 행동의 결과는 어떤 식으로 일어날까?’와 ‘A를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면, B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사용해 보세요. 불분명한 주장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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