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7 20:24
수정 : 2006.08.28 12:00
교과서로 끝내는 과학 논술
지난호(7월24일자)에서 과학논술을 잘 쓰기 위해 연습해야 하는 몇가지 ‘과정’을 소개하였다. 실제 학생의 작품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과학 논술 연습 첫 단계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던 현상이나 사물의 작동원리를 설명해보는 것이다.
학생작품 1: 라면 끓이는 법 라면을 끓이기 위해서는 일단 냄비, 젓가락, 가스레인지, 물의 양을 잴 수 있는 컵, 물 그리고 라면 한 봉지가 필요하다. 제일 처음에 해야 할 일은 물 550cc를 재서 냄비에 붓고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린 다음 강한 불로 2~3분 정도 끓인다. 그 2~3분 사이에 해야 할 일은 라면을 반으로 쪼개고 스프 봉지를 다 뜯어놓는 일이다. 냄비에서 김이 나오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고 라면과 스프를 함께 넣는다. 라면과 스프를 넣고 1분 정도는 뚜껑을 닫고 기다린다. 그 다음에는 다시 뚜껑을 열고 긴 젓가락을 사용해서 라면이 잘 풀어지고 스프가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이 때 라면을 잘 저어줄수록 면발이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1분 정도 저어준 후에는 계란, 당근, 파 등의 야채를 넣고 30초 동안 더 끓인다. 넣지 않아도 되지만 넣는다면 더 맛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라면을 그릇에 옮긴 후 먹으면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가스레인지의 가스밸브를 꼭 잠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 글처럼 주변에서 흔하게 보던 현상이나 사물의 작동원리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내용을 정하는 것이 좋다. 학생들은 ‘라면 끓이는 법,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 거울’ 등의 제목으로 설명을 시도했지만 대체로 무엇을 설명해야할지 80분의 논술 수업 동안에 결정하지 못하였다. ‘라면 끓이는 법’을 설명한 위의 학생 글은 자신이 흔하게 경험하는 글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는데, 글을 처음 써보는 대부분 학생들은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할 지부터 막막해한다. 그 이유는 무엇을 설명할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논술을 시작하는 학생들 중에는 급한 마음에 처음부터 실전 과학논술을 써보면서 형식적인 틀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글의 형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남에게 설명하거나 설득시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따라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저학년 때는 논술의 형식에 맞추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쉽게 써 내려갈 수 있는 자신감을 길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미리부터 논술의 기초훈련이 충분히 되어있다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고학년에 가서 아무리 노력해도 글의 질이 향상되지 않아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일기를 써보자. 일기는 자신 혼자만 보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좋지만, 이 학생의 글처럼 ‘주변 현상의 설명’을 일기에 담아보자. 일기의 양이 누적될수록 자신의 글에서 ‘주변 현상을 너무도 쉽고 자신 있게 표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글 끝부분에 ‘넣지 않아도 되지만’이라는 대목이 눈에 거슬린다. 정말 넣지 않아도 될 문구다. 독자를 설득시키는 과학논술을 훈련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라면 끓이는 법’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라면 끓이는 법’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글의 힘을 약화시키는 표현을 일부러 쓸 필요는 없다. 또 마지막에 추가한 ‘가스레인지의 밸브’ 이야기는 실제로 라면 끓이는 법과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글쓴이가 자신의 경험과 연관된 상상의 흐름 속에 빠져들면서 주제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글을 쓰면서 틈틈이 글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이런 실수를 누구나 범하게 된다.
또한 글의 주제와 상관이 없는 ‘가스레인지 사용 시의 주의점’은 글의 형식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결론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논술은 자신이 주장하는 하나의 논지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하나의 논리로 밀도 있게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론이나 결론에 수필처럼 경험적인 이야기를 등장시켜 글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글의 힘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학생작품2: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왜 땅에 떨어지는 것일까. 뉴턴도 이 간단한 현상에 의문을 품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내었다. 뉴턴이 이 현상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것과 반대로 만유인력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후략)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 글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본론을 예상하게는커녕 어떤 의도로 글을 써 내려가려는지 오히려 헛갈리게 만들고 있다. 글의 처음에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이 당연하다고 전제함으로써 글쓴이의 의도가 여기에 있다고 짐작하게 해놓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묻고 있다. 글쓴이는 글의 반전을 통해 글을 세련되게 만들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형식적 목적은 서론에는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자를 헛갈리게 만들 수 있다. 과학논술은 과학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 사실, 법칙들을 다루어야 하므로 어설픈 반전을 시도하는 형식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글의 아름다움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자.
최원석/서울 중동고 화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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