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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7 22:21 수정 : 2006.08.28 13:25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개학 며칠만에 아이들이 들뜨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동아리방으로 달려가는 아이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다음 주에 있을 축제 준비를 위해서다. 대부분의 학교가 9월 첫째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축제를 연다. 수능 일정에 맞춰 중간고사가 잡히고, 행사들이 배치되다 보니, 개학하자마자 축제를 하는 학교들이 많다. 개학 초의 축 쳐졌던 분위기가 싱싱하게 깨어나는 것만으로 축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축제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몇 해 전 담임을 맡았던 한 아이가 떠올랐다.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이 하나도 없어 늘 밖으로만 떠돌던 아이였다. 때로는 학교 밖에서 싸움을 벌여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고, 진로 문제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도 했던 그 아이. 수업 시간이면 엎드려 자거나 딴 짓을 해서 선생님들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심성은 착해서 내가 불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새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기도 했다.

그런데 축제 전 어느 날, 그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찾아왔다. 이번 축제 때 가요제가 있는데, 거기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음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늘 내게 이야기했던 것을 아는지라, 나는 덩치 큰 그 아이를 어린 아이처럼 토닥거리며 격려했었다.

축제 날 저녁, 나는 그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가요제를 처음부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여린 심성에 혹시 부르다가 실수나 하지 않을까, 그러면 더 마음에 상처가 클텐데,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그런 내 걱정을 날려버리기라도 하듯이, 그 아이는 무난하게 노래를 마무리하고 싱긋 웃으며 무대를 내려갔다. 비록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축제가 끝난 운동장을 지나가다 나를 만난 그 아이는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 아이를 향해 오른 손 검지를 치켜들어 주었다.

늘 국외자로 떠돌아야 했던 그 아이는 그 뒤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학급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많이 달라진 생활 태도를 보였다. 학교생활의 엑스트라였던 그 아이에게 축제는 처음 주인공이 된 무대였을 지도 모른다.

공부가 중심인 학교에서 평소 늘 기죽어 지내던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날이 바로 축제이기 때문에, 축제를 앞둔 아이들이 모두 생기가 돌고 활력이 있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축제에도, 더 많은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나는 축제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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