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8 17:39
수정 : 2006.08.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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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희 학생의 그림 : 교육이란 틀 속에 꿈을 펼칠 수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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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시가 되자 오히려 거리는 더 소란스러워진다. 아파트 단지 내 큰 길에 학원 버스가 줄줄이 도착하더니 학생들이 쏟아져 내린다. 늦은 밤이지만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내일 아침이면 눈을 비비며 학교에 가고 그렇게 하루 종일 공부하다가 또 한밤중에 귀가 하겠지. 문득 몇 년 전에 외국의 한 방송에 비쳐진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구상의 한 나라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믿거나말거나.”
화면에는 밤10시가 되어도 불야성을 이룬 우리나라의 학교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밤 1시이다. 정말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가 일상적인 인사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그래도 고3때만 바짝 공부하면 됐는데 이제는 고1도 이미 늦단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니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초등학생들도 놀지 못하고 모두 학원으로 몰려간다.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논술, 영어, 수학 과목들만이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좋은 학벌을 갖기 위해서이다. 그래야만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 사이에 돌고 있는 말이 바로 ‘10대 결정론’이다. 10대에 이미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무섭다. 남아있는 더 많은 날의 수고와 노력이 쓸 데 없는 일이라면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한심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고 그것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법인데 10대에, 그것도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지식을 익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아빠, 나 기다리는 거야?”
가로등 저 편에서 딸 녀석이 반색을 하며 달려온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유난히 수학과목에 부담을 느끼더니 결국 학원 신세를 지고 있다.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바로 학원으로 달려가 공부를 한 뒤 이제야 귀가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빠의 회의에 녀석은 미소로 답한다.
“나야 하나 밖에 안 하는데 뭐. 엄청나게 많이 하는 아이들도 있어.”
“그렇게 하고 자기 공부는 언제 한다니?”
고등학생들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는 일이 당연한 논리가 되었다. 학교 수업은 오직 대학 입시와 관련 있는 내용만을 가르쳐야 한다. 모의고사를 치르지 말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철저하게 지켜도 안 되고, 아이들의 인성이야 어찌되었든 명문 대학에 들어가면 교문 앞에 현수막이 걸린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개미핥기가 파놓은 함정에 빨려 들어가는 개미처럼 우리는 경쟁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있다. 파멸로 점점 더 깊이 끌려들어가면서도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피곤하지 않니?”
“이 정도야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라면 다 하는 건데. 뭐”
녀석의 웃음이 마치 정답에 길들여진 10대들의 모습처럼 보여 씁쓸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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