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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3 19:54 수정 : 2006.09.04 17:31

‘박씨부인전’은 남녀차별 소설?

내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신다. 아버지는 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어머니는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일하신다. 나는 부모님께서 함께 일하시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선 시대에도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했을까?”하고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중략) 이러한 상황에서 읽은 <박씨부인전>은 내게 양성의 사회생활에 관한 구체적인 예를 제시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소설을 병자호란 당시 박씨부인이 도술을 부려 외적을 막아냈다는 내용의 영웅 소설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이 소설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박씨부인이 허물을 벗기 전 전반 부분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박씨부인전>이 여성을 영웅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여성들에게 자긍심을 준 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많은 여성들에게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이바지한 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여 부인이 내쫓길 이유가 되는 7가지 조항이 있었다. (중략) 이 조항들을 박씨부인에게 적용해 보면, 박씨부인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조항에 따라 내쫓김을 당할 수 있었다. 박씨부인이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며 나쁜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부인은 남편과 첫날밤을 함께 지낼 수 없으리만치 추한 용모를 지닌 여성이다. 아무리 남편 이시백이 잠자리를 함께 하고자 노력하나, 번번이 그 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은 이 문제의 원인이 부인에게 있음을 증명한다. 박씨부인이 이후 허물을 벗고 민족의 영웅으로 등장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도 그의 자식에 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박씨부인은 얼굴이 심하게 얽어 있을 뿐 아니라, 밥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병을 앓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얽었다면, 당시 가장 무서워했던 ‘마마’(천연두)라는 병에 걸렸을 것으로 본다. 또한 밥을 한 끼에 한 말씩이나 먹는다는 것은 음식물에서 영양을 흡수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거나 아니면 당뇨병과 같은 소화기 계통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어쩌면 자폐증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씨부인은 시집오기 전에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시집 와서는 피화당에 갇혀 지낸다. 영웅으로 활약하는 후반부에도 박씨부인은 피화당에서 더 넓은 공간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 기이한 나무들을 심어두고 마치 거미가 나비를 잡듯 적을 유인하여 잡을 뿐이다. 따라서 박씨부인은 조선시대 일반적인 여성처럼 매우 불안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처지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일반 여성과 달리, 박씨부인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처지를 바꾸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다. 어떻게 여성이 활약하는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널리 읽힐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소설이 어쩌면 남성들에 의해 지어져 널리 유포되었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분명 여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이 활약하는 영웅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결코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편 이시백에게 새 장가를 들라고 청하는 부분은 <사씨남정기>에서 교씨가 취한 태도와 같다. 어쩌면 당시에는 여성 스스로 남편에게 새 장가를 들거나 첩을 들이도록 간청하는 것이 윤리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박씨부인은 여성의 전유공간인 안방에서 나와 스스로 후원에 별당을 짓고 거기에 갇혀 생활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박씨부인전의 저자는 한편으로 “이렇게 신비한 능력을 가진 여성도 남성을 떠받들며 살았는데, 너희들처럼 일반 여성이 남성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략)

나는 이 소설을 여성과 남성의 관계로 다시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남녀 차별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성이 국무총리가 되고, 국회 제1당의 대표가 된 사회이지만, 일반적인 여성들의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면 양성이 평등한 사회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병자호란만큼이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제 난국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에서 남녀 차별 문제가 빨리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박씨부인처럼 능력 있는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활약할 수 있도록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후략)

허창회/공주중학교 3학년



[평] 비판적 사고·자세한 논거·현실 적용 ‘3위 1체’

원문 내용은 더 자세히 논거를 갖춰 쓴 독서비평문이지만 지면상 줄여 싣는 것이 안타깝다. 고전소설을 읽으며 소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발간당시 창작 주체의 의도를 추론하고, 오늘날의 양성평등 문제와 연결지어 성찰하는 독서태도를 크게 칭찬하고 싶은 글이다.

박안수/광주국어교사모임회장. 광주고 교사. ansu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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