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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3 21:16 수정 : 2006.09.04 17:47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느 날 물고기 한 마리가 풍랑에 떠밀려 모래밭에 올라오게 된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바다로 돌아갈 수가 없는데, 마침 누군가 달려온다. 물고기가 반가워서 도움을 청했지만, 그는 ‘어부들의 미망인을 돕는 모임’에 늦었다며 뛰어가 버린다.

조금 뒤 다른 사람이 나타났으나, 이 남자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물 속으로 던져준다 해도, 또 다시 밀려나와 허우적거리겠지. 그렇다고 도와주지 않으면… 젠장, 난 모르겠다.’ 그는 자리를 피해버린다.

세 번째로 한 부인이 물고기를 발견하고, 사정을 말해보라고 한다. “어디 그럴 겨를이…하지만… 제 처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물고기가 간신히 설명을 마치자, 부인은 동정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겪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 자신의 탓은 아닐까요? 누가 매번 도와주다 보면, 의존심만 키우게 될지 몰라요.” 부인은 잠시 후 다시 올 테니, 스스로 자신을 도울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라고 한다.

기운이 빠진 물고기가 감았던 눈을 겨우 다시 떴을 때, 코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살려 주세요….” 물고기가 마지막으로 힘을 냈지만, 그는 듣지 못한다. 슬픈 표정으로 먼 바다 저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결국 숨을 거둔 물고기는, 조류에 실려 바다로 돌아간다. 얼마 후 물고기를 찾아온 부인은 빈 모래밭을 보고 기뻐한다. “나는 알고 있었어. 그가 정말 하려고만 한다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슬리벤의 우화 <지나쳐 간 사람들>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물고기를 외면한 사람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같은 책을 읽고도 자책할 필요 없이 이야기를 즐기면 되니 얼마나 부러운지!


이 책은 어른들 ‘의식’을 일깨우면서, 어린이의 ‘무의식’과 대화하는 이중적 코드를 갖고 있다. 많은 좋은 어린이 책들이 그러하다. ‘지금 여기’ 어린이의 현실을 다루기도 하지만, 앞으로 걷게 될 인생에 대한 어떤 진실을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뛰어난 통찰력이 발휘된 이러한 간명한 이야기들은, 필시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삶에 대한 어떤 ‘견해’나 ‘태도’를 갖게 한다.

이처럼 나이와 세대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어린이 책이 얼마든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멋진 문학세계를 놓치고 있음이 이따금 안타깝다. 어린이 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읽는 책인데 말이다.

선안나/동화 작가 sun@iic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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