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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4 17:30 수정 : 2006.09.04 17:30

김진아 학생의 그림. 그래도 ‘항복’하면 안되겠지. 다시 힘내서 으랏차차~

국회 회기가 시작되나보다. 모이면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정당에 따라가기 바쁜 의원들이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제대로 민심을 살피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그 기대마저도 접은 지 오래 됐다. 의원님들이야 워낙 높으신 분들이니 한낱 교사가 뵐 기회가 있을까마는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연일 의원들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평생에 한 번 마주치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보다도 더 자주 입에 올리고 있으니 어인 일인지 모르겠다.

국회의원 요구자료.

하루에도 몇 건씩 ‘긴급’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이고 내려온 공문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내 얼굴을 거만하게 노려본다.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성격은 어찌나 급한지 오늘 내 책상에 올라오신 분이 오후면 가겠다고 성화다. 하이고 좀 쉬었다가 가시지. 무엇이 그리 급하담. 하지만 투덜댈 수 없다. 국정에 바쁘신 분들이라 괜히 발을 걸었다가는 민생이 파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속으로 흥얼거리며 자료를 챙긴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공문 처리인데 어쩌다보니 나의 주 업무가 되어 이 분들을 자주 뵙게 된다. 그러나 평소에 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꾸준히 법안을 발의하고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야 그저 흐뭇한 미소로 맞이한다. 따끈한 차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다. 아이들이 식중독에 걸려도, 체벌로 학교 현장이 시끄러워도, 아니 우리 아이들이 시들시들 여위고 있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다가는 이때가 되면 연신 공문을 날리는 분들에게는 고운 얼굴로 맞을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너그럽고 유쾌한 편인데 공문 앞에만 서면 나는 작아진다. 의사가 혈압이 높다고 절대 안정을 권했지만 공문은 개인 사정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 맞추어 내놓으라고 무릎을 까딱까딱하고 있다. 겨우 자료를 찾아 빈 칸을 채워 놓으면 뒤도 안돌아보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공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어떤 날은 ‘악’하고 소리치며 집어 던지고 싶은 날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아예 학교에서 교재 연구를 하지 못한다. 모두 싸들고 와서 집에서 준비하고 수업에 들어간다.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은 언제 생각해도 즐겁다. 아이들과 함께 멋진 수업을 하고 나면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그런데 이 일보다는 의원들의 자료를 챙겨주는 일이 더 우선이 됐다. 뿐만 아니다. 쉬는 시간까지 꼬박 공문에 매달리다가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교실로 들어가면 머리가 휑하다.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수업을 진행한다.

필요한 자료를 그때그때 요구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하면 좋겠다. 지역구의 현안을 챙기는 일, 국정을 보살피는 일로 바쁘겠지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이라면 소관 업무에 대해서 미리미리 챙겨보고 대안을 제시한다면 우리의 교육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장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 교사의 발목을 붙잡지는 않을 것이다.

‘의원님들, 제발 미리 챙기시고 공부 좀 하세요.’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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