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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0 17:34 수정 : 2006.09.11 13:44

논리로 배우는 수학

수학 교사인 내가 여러 모임에 나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자식 또는 손자 걱정이다. ‘우리 아이 어떻게 하면 수학 점수를 높일 수 있느냐?’ 또는 ‘수학 공부를 잘하는 비결을 가르쳐달라’는 주문이 이어진다.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인 나로서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숙제요, 내가 꼭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 왔다. 하지만 아직 나도 그 만병통치의 수학 공부법을 정확히 말하지 못해왔다. 아마도 내가 그 비법을 말했다면 주위 여러 군데로 불려 다니는 것은 물론 여론에 널리 알려져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나도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꼬투리를 잡았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은 기원전 300년경에 활약한 수학자 유클리드의 일화로부터 유래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학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황제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게 수학자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강의하는데 이를 어려워했던 황제가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도 수학 시간에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기하학(수학)은 정말 어렵구나. 좀 쉽고 빠르게 배우는 방법이 없을까?”

이때, 유클리드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돈으로 학위를 매매하고, 남의 논문을 복제하여 실적을 올리며, 대학에서의 강의보다 정치판에 기웃거리기를 좋아하는 요즘의 ‘그렇고 그런 학자’들이라면 그저 왕의 비위를 맞추어 뭔가 그럴듯한 비법을 설명하고 어려운 기하학 강의를 대충 초등스럽게 낮춰서 강의 내용을 바꾸려 했겠지만 유클리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왕이시여, 기하학에는 왕도가 따로 없습니다!!!”

과연, 21세기가 되어서도 최고의 기하학자로 불리는 유클리드다운 대답이다.


그러나 수학을 공부하는 왕도는 없는 것일까? 나는 다음 두 가지 공부 방법에서 이 답을 찾고자 한다.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에서도 똑같이 나눌 수 있는데, 쉽게 말해서 이해 위주로 가르치느냐 아니면 기능 위주로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수학의 갖가지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을 위주로 공부할 것이냐 아니면 각종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 풀이 기능을 많이 익히는 것을 위주로 수학을 공부할 것이냐로 나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학을 공부하는 왕도는 이해 위주로 공부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미 오래 전에 <의미를 중시하는 학습이론>을 주장한 브라우넬(Brownell)이라는 학자가 주장한 것이다. 이 학자의 주장 중에서 내가 지금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를 중시하는 학습 방법에 아주 공감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의미를 중시하는 학습은 기억을 보존시켜 주므로 반복 연습의 양을 줄여 준다.

(2) 의미를 중시하는 학습은 전이 능력을 제공한다.

(3) 새로운 수학적 문제 상황에 확신을 갖고 대처할 수 있게 된다.

(4) 수학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수학을 가르치는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논리적 사고력 향상에 있다. 논리적 사고력은 여러 가지 별개의 사실들을 잘 엮어서 뭔가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의미 있는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수학에서는 여러 별개의 개념들을 잘 엮어내지 못하고 각각을 별개로 공부하게 되면 그 복잡성은 매우 크게 되며, 수학을 공부할 분량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효과 있는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공부 방법을 고수하고 있으니 수학이라는 과목이 어렵고 싫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 보라. 중학교 1학년 때 배운 일차방정식의 해결 방안이 중학교 2학년에 가서는 미지수가 두 개인 연립일차방정식을 해결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고등학교 1학년에 가서는 미지수가 세 개인 연립일차방정식은 물론 미지수가 두 개인 연립이차방정식까지 해결하게 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k에 관한 항등식은 k가 어떤 값을 갖더라도 항상 성립하는 등식을 말한다. 이러한 항등식의 개념은 독립을 의미하며, 이것은 부등식이나 함수 또는 행렬, 그리고 확률에까지 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수학은 어려운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나는 우리 학교나 주변의 고등학고 2학년이나 3학년이 공부하는 <수학I> 또는 <수학II>라는 과목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질문 내용을 보고 과제를 해결하다 보면 대부분 중학교 과정 또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의 수학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이 드러난다. 결국 고등학교 2, 3학년에 배우는 수학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기초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내용에 대한 이해가 잘 안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좋은 의사(교사)라면 그 환자(학생)에게 어떤 처방을 내릴 것인가? 원인을 발견하고도 그 근본적인 치료를 포기하고 시간이 없으니 암기만이라도 하여 적당히 수능시험을 보게 할 것인가? 아니다. 좋은 의사로서의 처방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수학 성적이 올라갔다는 사례를 본 적이 있는가?

지금 중학생 또는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중학교 때부터 수학의 갖가지 내용을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으로 학습하도록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수학 교사가 이 글을 읽는다면 수업 시간에 정말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수학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수학 교사들이 기껏 가르친 수학 교육의 결과로 수학을 싫어하게 만든다면 수학 교사들은 존재 이유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의 그 의미를 중시하는 학습이 일어났을 때에만 수학은 그 학생과 이 사회에 바로 자리잡을 수 있으며, 비로소 친환경적인 수학 공부가 가능해진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수학을 공부하는 왕도다.

최수일/서울 용산고 교사 choi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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