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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0 17:46 수정 : 2006.09.11 13:45

아낌없이 주는 나무

교장선생님이 정년퇴임을 하셨다. 한사코 퇴임식 행사를 고사하셨지만, 학교 구성원들이 몇 차례 강권하다시피 해서 조촐한 퇴임식을 가졌다. 꽃다발을 드리고, 송공패를 전달하는 내내, 교장선생님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내게 그렇게 보인 것은, 바라보는 내 마음이 쓸쓸해서였을 것이다.

이곳 저곳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많은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그런 만남의 대부분이 개운치 않은 것은, 내가 생각하는 학교와 그런 교장선생님들이 생각하는 학교가 달랐기 때문이다. 교육적 소신이 다른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비교육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상황과 그런 상황을 만들어가는 학교 경영 책임자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교장선생님은 좀 달랐다. 축제 때 동문회에서 가져온 찬조금조차 실제 업무에 고생한 선생님들이 써야 한다며 해당 부서에 넘겨줄 정도로 청렴했다.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들을 이해하고, 사소한 것에서도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준 분이었다. 특별활동 일지를 결재받기 위해 교장실로 한 아름의 일지를 들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 그럴 경우 도장을 내어주고, 담당자가 알아서 찍도록 하는데, 교장선생님은 그 많은 걸 어떻게 혼자 다 찍느냐며, 직접 일일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갈등이 없을 수 없는 학교의 여러 일들도, 자신의 생각보다는 학교 구성원의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요구한 두발 자율화도 교사,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거쳐 시행하였다. 시행 자체보다도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구성원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기를 원하는 분이었다.

퇴근길, 교문 근처에서 나와 마주친 어느 봄날, 교장선생님은 자신이 부임한 뒤 심은 꽃과 나무를 돌아보다가 내게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학교는 나무와 꽃으로 숲을 이루어야 하는 곳인데,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에는 그런 공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아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퇴임식장에는 지방의 한 학교에서 담임을 했던 제자들도 여럿 찾아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이 늙어가는 것 같은 그 제자들은, 단상 위로 올라가 옛 스승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내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한 것은, 제자들에게는 애틋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의 보편적 감성 때문이었으리라.


늘 갈등과 고민만 갖게 했던 학교 관리자들을 만나다, 드물게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나 학교생활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몇 해가 행복했다. 아마 나는 때때로, 이제는 교직의 길에서 떠나신 그 교장선생님을 기억할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말이다.

최성수/서울 경동고 교사 borisog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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