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를 합리화한 기고문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한승조(韓昇助ㆍ75)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해 고려대가 7일 임시 처장회의를 열어 후속조치를 취하기로 함에 따라 결과가 주목된다.
고려대측은 한씨의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4일 오후 "고려대의 입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해명자료를 보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그동안 대학측이 '민족사학'을 표방해왔다는 점에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학 총학생회를 비롯해 재학생과 졸업생은 성명서ㆍ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학교가 한씨의 명예교수직을 즉각 박탈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 난감한 '민족 고대' = 고려대측은 일단 한씨의 기고문이 개인의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학교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이미 10년 전 학교를 떠난 명예교수의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한 글이기 때문에 학교와는 전혀 관계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 뒤 "한 명예교수에게 그런 글을 기고한 경위 등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 고려대가 한씨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 의견'으로만 치부해 유야무야 넘기기에는 비난 여론이 너무 거센 게 사실이다.
학교 인터넷 자유게시판에는 "건학 100주년이라고 여러 방법으로 고대 이미지를 높이려 했던 일들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하는 동문들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특히 한씨의 명예교수직 박탈은 물론 선배들이 그동안 견지해왔던 거짓과 불의에 대한 저항정신에 비춰 한씨에게 대국민 사죄를 촉구해야 한다는 글도 있다.
문제는 한씨가 개인 자격으로 문제의 글을 일본의 월간지에 기고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고려대 명예교수'라는 '명함'을 달았기 때문에 고려대가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려대 홈페이지와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한씨와 같은 역사의식을 가진 인물에게 명예교수라는 '타이틀'을 준 고려대를 싸잡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측은 "당장 어떤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겠지만 7일 임시 처장회의를 통해 진위를 파악하고 후속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자꾸 고려대와 연결시키려고 하지 말라"고 곤혹스러워 했다.
◆ '명예교수 박탈' 가능한가 = 고려대를 졸업한 한 교수는 1967∼1995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교우회 회장을 지내고, 1995년 정년퇴직과 함께 명예교수로 임명됐다.
정교수라면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의 내용을 준용한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정관에 따라 ▲형사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한 경우 등을 제외하곤 교원으로서의 신분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한 교수는 직함 그대로 현재 명예교수 신분.
학교의 명예교수 규정은 명예교수의 자격을 '고려대 전임교원으로 25년 이상 근무하고 정년,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로 퇴직한 정교수로서 그 재직 중 교육 및 학문상의 공적이 뛰어난 자'로 정하고 있다.
명예교수는 이런 자격을 갖춘 사람에 대해 소속 학과의 추대 심의를 거쳐 대학 학장이 총장에게 추천하고, 교원인사위원회가 총장 제청에 따라 덕망ㆍ교육상 및 학문상 공적 등을 심의해 추대하는 절차를 거쳐 임명된다.
이렇게 명예교수로 임명되면 매월 소정의 세비를 지급받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학교에서 강의ㆍ연구를 위촉받아 수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촉에 관한 절차나 조건을 명문화한 규정은 없는 상태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최근 파문을 일으킨 한씨의 기고문이 명예교수의 자격기준을 충족시키느냐 하는 대목이다.
그의 일제 강점 합리화 입론(立論)을 과연 '교육상ㆍ학문상 공적'으로 볼 수 있느냐, 혹은 이는 전적으로 학문ㆍ사상적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느냐 하는 것.
대학측은 "명예교수는 원칙적으로 종신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도에 스스로 자격을 내놓거나 학교에서 박탈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의 명예교수직 박탈을 촉구하는 여론이 드높은 상황에서 고려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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