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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6 18:15 수정 : 2005.03.06 18:15

김한종의 우리문화 우리역사

오래 전에 만들어진 고지도는 만들 당시의 지리적 인식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지도를 사용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주로 행정구역을 나타내거나 군사적 목적으로 지도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가 국가의 기틀을 다지면서 지도 제작이 본격화했다. 전국지도와 8도, 그리고 군현지도가 만들어지고, 이를 아우르는 <동국지도>와 같은 지도들도 제작됐다. 영토 확장에 따라 국토의 지리적 인식을 새롭게 하고, 국방이나 그 밖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기 지도들은 중국에 전해져 서양 사람들이 세계지도를 그릴 때 우리나라를 나타내는 데 참고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독도는 우리땅” 옛지도 속속
일본 억지주장 그만뒀으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세계지도도 제작됐다. 태종 때는 중국과 아라비아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고 조선과 일본의 지도를 참고해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에는 중국을 가운데에 두고, 동쪽으로는 한국과 일본, 서쪽으로는 유럽, 아프리카까지 나타나 있다.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대륙, 이른바 ‘구대륙’을 포괄한 것으로, 당시의 지리적 지식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중국을 중심으로 하고, 세계를 가상적으로 그린 원형지도인 <천하도>도 나타났다. <천하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에 의한 지도편찬도 활발해졌다. 18세기 영조 때 정상기는 처음으로 축적법을 사용해 색채지도인 <동국지도>를 만들었다. <동국지도>에는 도로와 물길, 통신망 등이 나타나 있다. 1834년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도 이와 같은 성격의 지도였다. <청구도>에는 우리나라의 지형은 물론, 각 지역의 지명이나 행정적 변천, 당시의 행정구역, 성이나 창고, 다리, 저수지 같은 각종 시설, 인구와 가구 수 등 인문적 환경을 수록했다. 조선시대의 고지도를 대표하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이러한 지도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대동여지도>는 <청구도>의 내용을 보충하고, 이용하기 편리하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책자 형태를 띠고 있다. 산과 강을 주된 줄기와 갈라져 나온 것까지 세밀하게 구분하고, 바다와 섬 등 자연지형을 자세히 나타냈으며, 각종 도로를 그 거리까지 정확히 표시했다. 행정관서, 국방시설 등도 구체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정치·경제·국방·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최근 독도 문제와 관련해 고지도가 종종 소개되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 이전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한 국내외의 고지도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들 고지도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억지 주장을 그만두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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